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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리 집단이주의 비운글의 제목을 ‘고리 집단이주의 교훈’이라 했다가 이건 아니다싶어 ‘고리 집단이주의 비운’으로 고쳤다. 교훈이라 해도 그런 기회가 다시는 없을 것이고 보면 아무래도 슬픈 운명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맞을 것 같다. 왜냐하면 살던 곳에 대해 말문을 연다한들 그리움은 고사하고 한만 서려있기 때문이다. 이런 글이 어쩌면 한에 찬 마을사람들의 맘을 담았기에 뜻이 배가될지도 모른다. 지난날을 돌이켜보지만 고리가 그런 곳이었냐며 안타깝게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고리는 어떤 곳인가. 조선시대, 미역이 진상되고 조세부담을 위해 마을이 세자궁에 속했다. 이 마을은 예로부터 황금어장으로 소문이 자자했다. 고리는 자연경관이 빼어나고 명소가 많아 유서가 깊다. 이런 마을에 나라의 경제개발이 화두였던 반세기 전, 어느 날 느닷없이 원전이 들어서게 됐다. 원전의 건립은 우리나라에선 이곳이 첨이다. 뿌리가 깊은 마을사람들은 귀신에 홀린 듯 했다. 그러다가 녹록치 않은 보상이 이뤄졌다. 현금을 거머쥐다 보니 눈이 휘둥그레지는 사람도 있었으나 대부분의 사람은 국가사업에 협조를 해야 한다면서도 쥐꼬리와 같은 보상에 불만이 많았다. 턱없는 돈으로 떠나라니 사람들이 술렁거렸고 투덜댔다. 어업의 의존도가 높았던 부촌을 두고 떠나면 용돈과도 같은 돈으로는 살기가 어렵다는 여론이 빗발쳤다. 사람들은 실의에 빠졌고 그러다보니 철거에 미온적일 수밖에 없었다. 그러자 개발의 신호탄인 트랙터가 들이닥쳤다. 불만을 가진 사람들이 신작로에 있는 공터에 모여 웅성거렸다. 이 금액으론 안 된다며 한탄의 목소리가 봇물 터지듯 쏟아졌다. 동태를 살피러 비밀정보요원과 경찰들이 설쳐댔다. 마을사람들은 주눅이 들어 이들의 눈치를 살피며 자리를 뜨는 사람도 있었다. 그것도 그럴 것이 얼마 전, 이웃마을의 한 유지가 원전건립을 반대하다 모처에 끌려갔던 일이 있었기 때문이다. 영세한 동민들은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몰랐다. 이들은 말께나 하는 사람이 나서주기만을 바라고 있었다. 막상 모여서도 앞장서서 열변을 토하는 사람이 없었다. 더구나 나라에서 하는 일이라 찍소리도 내지 못했다. 요즘처럼 표현의 자유가 없었고 촛불시위와 같은 시위문화도 없었다. 가라면 가야했다. 만나는 사람마다 ‘어디로 갈건 데’가 인사였다. 며칠이 지났다. 어차피 갈 수밖에 없다고 체념했는지 마을사람들의 발길이 바빠졌다. 봇짐을 실은 트럭이 연이어 들락거렸다. 개별 이주가 시작되고 집단이주가 뒤를 이었다. 집단이주는 공교롭게도 둘로 쪼개졌다. 한쪽은 인근의 동쪽으로, 다른 한쪽은 바다 건너편으로 갔다. 동으로 간 마을은 다시 신고리원전에 위해 철거됐음으로 언급할 필요가 없어졌다. 바다 건너편에 간 마을은 기존의 마을에 터를 잡았지만 입주 순간부터 본동 사람으로부터 눈총을 맞아야만 했다. 소위 말해서 텃세였다. 왜 하필 우리 마을에 왔느냐다. 사람들마다 눈을 흘겼다. 살던 곳에선 떠밀렸고 이주지에선 냉대를 받아야만 했다. 우리가 새터민이라도 되나. 이주민도 본동 사람들에게 할 말이 있었다. 너희 마을이라 하여 철거되지 말라는 법이 있느냐고 말이다. 세상의 일은 역지사지가 아닌가. 나라에 의해 철거됐을 뿐인데 같은 지역에 살면서 이럴 수가 있느냐는 게 이주민들의 항변이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고리의 집단이주는 시기적으로 묘했다. 줄잡아 5년 뒤에만 철거돼도 이런 괄시는 없었을 것이다. 이주민들은 가는 곳마다 차별을 받았다. 겨우 어렵게 자리를 잡았으나 지금의 이곳도 마찬가지였다. 부지가 적어 길도 차가 들어갈 수 없는 골목길밖에 낼 수가 없었다. 이주민들이 부지를 넓히려 애를 썼으나 땅을 파는 사람이 없었다. 이주민들은 집단으로 온 게 서러웠다. 여생을 정이 없는 이주지에서 보내야만 했기 때문이다. 객지생활에 잔뼈가 굵은 제주도 해녀들은 그다지 서럽지가 않았다. 어디서든 물질을 할 수 있어서다. 입주자들에게 씌워진 올가미는 철거민과 이주민이란 레테르였다. 마을을 떠날 땐 철거민이었고 이주지에 가자 본동의 사람들은 이주민이라 불렀다. 이주민이란 말은 조롱의 대상이었다. 이름에 대한 강박관념이 늘 이주민들에게 꼬리표처럼 따라다녔다. 고리집단이주의 걸림돌은 자연산 미역의 상징인 곽암이었다. 곽암이 집단이주를 가로 막았다. 미역돌이 있는 어촌은 다 그랬다. 텃세는 미역돌로 인해 생겼다. 당시만 해도 수산동식물의 서식처인 미역돌은 마을의 큰 재산이었다. 마을의 생존권이 달렸음으로 집단이주는 그들에게 있어 눈에 가시일 수밖에 없었다. 그러기에 본동 사람들을 원망하거나 나무랄 수도 없다. 철거민들이 이구동성으로 하는 말이지만 고리가 1970년대의 중반에만 철거돼도 이런 냉대는 없었을 것이란 말이 빈말은 아닌 것 같다. 왜냐하면 양식산 미역의 붐이 일게 되자 갯바위의 값어치가 시들해졌기 때문이다. 이주민들로선 격세지감이 아닐 수 없고 보면 시기가 족쇄를 채운 셈이다. 고리이주민들은 운이 없었다. 미역돌때문이다. 이주지의 마을 뒤는 지금도 골목길여서 차가 들어가지 못함에 따라 집 가치가 없다. 이주지도 미역돌로 인해 행정적으로 독립이 되지 못했다. 보상이 적어 개별이주를 못하고 택한 집단이주. 이는 많은 문제점을 남겼다. 국가의 책임이 없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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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갑잖은 이름, 오시리아‘또 시작이다.’ 이는 어떤 대상을 두고 반복할 경우, 이르는 말이다. 내가 왜 이런 말을 하는 지는 들어보면 안다. 잘 알다시피 부산엔 웨스트마크, 벡스코 등 외국어로 된 명칭이 여럿 있다. 기장지역에선 오시리아가 뜬금없이 생색이라도 내려는 듯 선을 뵈고 있어 사람들을 끄달리게 한다. 내가 스스로 ‘또 시작이다.’란 말을 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오시리아란 단어의 잘못에 대한 나무람이 한번만이 아니기 때문이다. 오시리아는 <햄릿>의 등장인물인 오필리아와 같이 외국어가 아닌 합성어로서 이름을 마주할 때마다 성격이 독특한 것 같아 잠시도 눈을 뗄 수가 없다. 오시리아는 동부산관광단지가 들어선 이후 언제부터인가 생긴 이름이며 동해선 경전철의 역명도 그렇게 하여 지어졌다고도 할 수 있다. 문제는 이러한 명칭이 사실에 부합되느냐는 것이다. 나의 경우, 오시리아란 역의 명칭에 대하여는 맨 첨 경전철안의 어떤 승객으로부터 전해 듣고 알았다. 오시리아란 글자그대로 오와 시 그리고 리아로 조합된 단어로서 얼핏 그럴듯한 것 같지만 사람들의 관심만 끌뿐, 관광명소의 적용상 불합리한 점이 있어 명칭에 대한 심도 있는 검토가 요구된다. 내가 2018.4.24 지방의 일간지(기사 : 독자의 눈)를 통해 오시리아의 문제점에 대해 시민들에게 주의를 환기시킨 것도 이 때문이다. 오시리아관광단지의 모태인 동부산관광단지는 해운대구 송정동과 인접해 있는 기장읍 당사리 및 시랑리의 일원에 위치하나 요즘 기장군 일대의 바닷가가 맛집과 카페 등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나면서 많은 인파가 몰려듦에 따라 군 전체가 관광단지로 그 범위가 넓혀지고 있는 실정이다. 오시리아관광단지를 연결하는 동해선의 중심지역인 오시리아역에 대해 살펴본다. 이 역은 행정구역상 당사리에 속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관계당국이 역의 지명을 두고도 오시리아에 눈이 꽂히듯 집착하는 이유는 뭘까? 역명을 볼 때마다 느껴보지만 왠지 어리둥절하고 고개가 절로 갸우뚱해짐을 지울 수가 없다. 역명에 대한 일반인의 관심은 어떤가. 역명에 대한 관심은 이외로 커 승객들이 오시리아란 안내방송을 듣기만 하면 오시리아가 뭔지를 들먹이는 경우가 허다하고 개중엔 뜻을 알기위해 역무실을 직접 다녀가는 사람도 더러 있다한다. 오시리아란 역명은 역내에 게시된 안내문에 쓰여 있다. 보면 알겠지만 내용이 어떤 의미로 다가올지 관심부터가 맘을 조이게 한다. 이에 의하면 “부산도시공사가 조성중인 동부산관광단지의 교통편의성 증대를 위하여 동해선 신설 구간에 새로 지어진 역으로서 테마파크개발과 더불어 동부산관광단지의 통합브랜드명으로 오시리아를 채택하였다. 오시리아 뜻의 유래는 관광단지내 절경을 자랑하는 오랑대 그리고 용녀와 미랑스님의 사랑이야기를 간직한 시랑대에서 머리글자를 따와 장소를 나타내는 접미사 이아(~ia)를 합성한 단어이다. 또한 중의적 의미로 부산으로 오시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라고 하는 등 솜씨를 보이겠다며 설명이 장황하다. 그렇지만 과연 사실에 맞기나한 걸까? 관광단지내의 오시리아테마파크가 말해주듯 오시리아를 알려면 먼저 오랑대와 시랑대의 배경부터 꼼꼼히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기장의 향토지인 <구기장군향토지(1992. 재부구기장군향인회)>에 의하면 ‘오랑대의 유래와 전설’은 어디에도 찾아볼 수가 없다. 다만 ‘시랑대’편에서 “1733년 권적이 기장현감으로 좌천돼 이곳 경치를 보고 자기벼슬인 시랑을 따 시랑대란 세 글자를 바위에 새긴 뒤부터 올랑대의 북쪽은 원앙대鴛鴦臺(지금의 해광사 일대), 남쪽은 시랑대라 구분하였다.”라고 했다. 여기서 말하는 올랑대가 바로 원앙대 그 자체이다. 올앙대이기도 한 오랑대는 시랑대의 원명인 원앙대에서 지역사람들에 의해 제각각으로 변음 돼 그렇게 부른다. 2001.4.21 박약회 부산지회가 발간한 <부산의 전통과 문화>란 책을 보면 오랑대라 하지 않고 위 향토지처럼 올랑대라 표기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랑대는 들먹이면서 원앙대와 아주 가까운 말인 올랑대와 올앙대 등은 배제한데 대해 오랑대가 이들 명칭의 대표라도 된다는 건지, 관계 당국의 설명이 없다는 점은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시랑대가 들어서기 전부터 비오리가 원앙새처럼 파도를 타며 주변을 넘실댄다하여 이름 지어진 원앙대. 문헌엔 어떻게 나와 있는지 살펴본다. 규장각에 소장된 <1872 군현지도(기장지도)>인 ‘경상남도 기장군 여지도’란 고지도를 보면 시랑대와 죽도(기장읍 연화리 신암마을 소재) 사이에 오랑대의 본디 말인 원앙대가 뚜렷이 표기돼있고 <영남읍지(1895)>의 [형승] 편에 의하면 “원앙대는 기장현에서 남쪽으로 10리, 시랑대는 현의 남쪽 15리에 있다.”라고 하였다. 문헌대로라면 오랑대 등이 아닌 원앙대여야 맞다. 문헌은 법으로 치면 헌법에 해당돼 이를 지켜야함은 상식이다. 그러니까 기장의 향토가사인 <차성가(1860)>의 주석에서 보듯 “원앙대는 연화리 서암마을에서 동남쪽으로 바라보이는 곳(현 오랑대의 위치)에 있다.”라고 함으로써 문헌상의 지명을 뒷받침하고 있지 않은가. 그런데도 근자에 이르러 한국철도공사가 제작한 ‘코레일 광역전철 노선도’를 보면 문헌에도 없는 오랑대를 임의로 삽입하는가하면 일부 간행물엔 검증되지도 않은 한문으로 표기하고 새로운 유래까지 설정함으로써 전래되던 원앙대의 유래이자 상징인 금실 좋은 원앙의 고유한 이미지가 어디에도 찾아볼 수가 없고 그러다보니 이의 뜻이 되레 잠식되고 있는 실정이다. 사실, 오랑대는 기장8경에 속하지도 않으며 문헌상 원앙대, 시랑대, 태정대, 적선대, 용두대, 황학대 등과 같이 기장의 대명臺名에도 나오지 않는다. 왜냐하면 오랑대는 올랑대, 올앙대와 함께 이의 원명이 원앙대에서 비롯됐기 때문이다. 거듭 말하거니와 해광사 주변을 위 향토지의 지명풀이처럼 오랑대라 하였지만 이와 유사한 이름이 난무하는 한, 원명을 내세우는 게 당연지사가 아니겠는가. 철도관계자의 말을 빌면 오시리아의 영문은 osiria, 중국어로는 奧西利亞(오서리아)로 표기하며 한글로는 오시라란 뜻을 가지고 있다한다. 여기서 보듯 오랑대, 올랑대, 올앙대 등은 원앙대의 원음이 지역 사람들에 의해 와전돼서 생겼다. 특히 오랑대의 경우, 올앙대를 풀어쓴 말이고 또한 올랑대의 올에서 ㄹ자를 뺀 것일 뿐 공인된 명칭이 아닌데다 문헌엔 원앙대여서 원앙대가 살아있는 한 오랑대 등은 들먹일 대상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역명만은 오랑대가 들어감으로써 만들어진 오시리아가 아닌 행정지명을 딴 당사로 하되 관계기관이 꼭 관광명소를 넣어야겠다면 원앙대, 시랑대의 머리글자에다 접미사는 롯데리아의 리아를 따 만든 원시리아로 대체하는 게 어떨까싶다. 관광단지의 이름만 해도 그렇다. 기장읍 내리에 있는 삼정그린코아 더 베스트아파트의 경우, 등기부상 동부산관광단지로 돼있음에도 불구하고 관광단지의 이름을 또다시 오시리아관광단지를 내세우다니. 관광단지의 이름이 양립되면 이는 옥상옥이 아닐까? 궁금한 것은 또 있다. 오시리아가 첨 등장할 때만 해도 관계당국이 공청회를 거쳤는가라는 점이다. 명칭을 정할 땐 신중해야한다. 오랑대는 원앙대란 지명에서 변천된 것이 아니어서 내세울 대상이 아니며 더욱이 문헌에도 나오지 않아 오시리아의 브랜드로선 적합하지 않고 그렇기 때문에 오시리아를 주장할 하등의 이유가 없다. 어떤 사람은 말하길 ‘오랑대의 유래가 있기 때문에 오랑대란 명칭을 사용해도 무방하지 않겠느냐.’라고 반문하기도 한다. 하지만 문헌에도 없는 오랑대를 들먹임으로써 전래되던 원앙대란 고유의 명칭과 이의 유래가 역사의 뒤안길로 묻히고 그것도 모자라 근간에 이르러 오랑대가 마치 독자적인 지명인양 갖은 설을 내세우며 이의 유래까지 소설을 쓰듯 함은 엄연한 역사를 그르치는 일이 아니겠는가? 오시리아를 부각시킴으로써 원앙대가 수면 아래로 묻히는 등 고스란히 피해를 입고 있다는 사실. 이를 알고도 그냥 지나치자니 방관자란 소릴 들을 수밖에 없을 것 같다. 그러기에 만시지탄이지만 이를 바로 잡는 것이 지역에 몸담은 사람으로서의 역할이 아닐까란 생각에서 이 문제를 되짚어본다. * 기고 : 김차웅. 검경합동신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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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알려지지 않은 허경영의 무료급식계절은 어김없이 생동감을 불어넣어주지만 경제가 어렵다보니 세상 민심은 녹록하지가 않다. 특히 생계가 어려운 노인들은 엄동설한을 어떻게 보냈는지 이들의 모습이 뇌리에서 지워지질 않는다. 이를 보여주는 단적인 예가 있다. 바로 서울 종로3가 탑골공원 뒤, 낙원상가 입구의 거리가 그곳으로서 요즘 매일 새벽부터 노인 빈곤층의 행렬로 장사진을 이룬다. 무료급식의 혜택을 보기 위해서다. 하루의 끼니를 위해 여기에 목을 매는 이도 있다니 맘이 참으로 착잡하다. 저 노인들에게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날씨에 관계없이 누가 무료급식을 하고 있을까. 한 개인이 무료급식을 45년간 했다면 믿음이 가겠는가. 그 일을 그의 나이 22세부터 했다면 믿겠는가. 이런 무료급식의 주인공은 다름 아닌 신인 허경영이다. 세상에 이런 고마운 분이 또 있을까. 그의 나이 불과 20대 때부터 무료급식이 가능했던 것은 재벌가인 고 이병철회장의 양아들이었기 때문이다. 그의 불우이웃돕기는 이때부터 시작됐다. 이를 뒷받침해주고 있는 것은 언론의 보도 내용이다. 그의 나이 40세에 주간 <중앙신문>에 나온 ‘한국의 페스탈로찌’란 기사가 이를 말해준다. 당시의 불우이웃돕기 등 봉사활동에 쓴 비용만 해도 980억 원에 달한다. 요즘의 화폐 가치로 치면 1조원에 가깝다. 그는 그 돈으로 자신의 출세와 호의호식을 하는데 쓰지 않고 대부분의 돈을 불우이웃돕기 등에 충당했다. 왜 그랬을까. 그가 어렵게 자랐고 배를 많이 굶어봤기 때문에 없는 사람의 심정을 누구보다도 잘 안다. 그는 하늘궁에서 강연, 강의 등을 통해 벌어들인 돈으로 약 80억 원의 세금을 내고 있고 무료급식을 하는데 한 달에 약 1억 원의 돈을 쓰고 있다. 무료급식에 있어 혜택을 보는 사람만 해도 매일 약 500명에 달한다고 하니 일 년이면 연 인원이 무려 182,500명이 된다. 적은 숫자가 아니다. 그가 뭣이 아쉬워 그럴까. 그는 남을 돕는 일에 타고 났다. 그는 이 시대의 진정한 애민가다. 그가 선거에 출마했던 기간에만 무료급식을 하지 않았다. 작년 추석 때 무료급식의 현장을 목격한 한 젊은 분이 감동을 받은 나머지 ‘허경영 이분을 널리 폭로한다.’란 요지의 글을 써서 화제가 됐다. 이처럼 무료급식의 현장을 봤다면 반응을 보이는 게 인지상정이다. 그러나 세상은 그렇지 않다. 수도 서울의 중심지에서 그것도 그 지역구의 일임에도 불구하고 해당 정치인이 이곳을 찾아 봉사자를 격려하고 허경영의 선행을 알렸다는 등의 소식은 듣지 못했다. 말이 될법한가. 선행일수록 장려해야 하고 세상에 널리 알려야한다. 그래야 제2, 제3의 선행자가 나오고 기업가나 종교인 등에게도 귀감이 되기 때문이다. 그간 무료급식을 보도한 언론은 지금까지 ‘국제뉴스’가 유일하다. 허경영의 무료급식은 기사거리가 될 만한데도 잘 알려져 있지 않다. 비애감마저 든다. 문제는 공영방송이다. 얼마 전, 모 방송사가 무료급식의 현장을 취재했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소개돼야할 주인공과 그의 선행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 그럴 거면 급식현장은 왜 내보내나. 그를 보란 듯이 약이라도 올리겠다는 의도인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그가 아닌 다른 정치인이었다면 언론의 주목을 받고도 남았을 것이고 종교인이나 재벌가였다면 언론에 크게 보도를 했을 것이다. 난 ‘허경영이 어때서.’라고 말하고 싶다. 그는 어떤 홀대에도 서러워하거나 분노하지 않는다. 인간이 자신의 심정을 모르는 것에 대해 안타까워할 따름이다. 왜 인간은 이 일에 인색할까. 그가 뭘 잘못했기에 그럴까. 반문하고 싶은 심정이다. 작년 말경, 한국유엔 봉사단 수석 부총재로 임명된 그는 분명 화제의 인물임에도 그의 직함을 아는 이는 드물다. 이 또한 언론의 그늘에 있었기 때문이다. 그에게만 왜 거리를 두는 걸까. 그가 두렵다는 반증이고 그를 언론에 띄우기만 하면 그를 당할 자가 없기 때문이란 말도 있다. 그는 지금까지 올곧게 살았다. 그는 사기꾼도 아니고 종교를 초월하였을 뿐 종교를 가진 교주도 아니다. 사기꾼이 대통령에 3번이나 나올 수가 있겠는가. 교주면 세금을 납부할 이유가 없고 그가 사이비면 무료급식을 할 리도 없다. 그의 무료급식은 사실이다. 하늘이 알고 땅이 안다. 아무리 흠집을 내려 해도 잡힐 게 없다. 허경영만큼 선행을 많이 한 인물도 드물다. 허경영만큼 양심적이고 정직한 사람은 눈을 닦고 봐도 없다. 허경영은 언론으로부터 많은 불이익을 받고 있다. 선거 때마다 여론조사에 넣어주지 않았고 방송 출연도 제한했다. 그에게 불리하도록 하는 이유는 뭘까. 그가 아무리 옳은 일을 해도 등을 돌린다. 모종의 압력이 있었다는 설이 빈말은 아닌 것 같다. 중진 가수의 말마따나 ‘테스 형, 세상이 왜 이래’라고 했지만 천국에서나 알아줄까. 부시를 만났고 트럼프를 만났음에도 방송이 앞장서서 거짓이라 했다. 있는 사실을 그렇게 매도해도 되는 걸까. 잘 알려지지 않은 허경영의 무료급식. 그의 선행은 우리 모두를 돌아보게 한다. 그래서 45년간 무료급식을 하고 봉사활동에 매진한 허경영을 세상에 폭로한다. 월남 참전 유공자지만 또 다시 그에게 훈장을 줘야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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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유 기고 후기불로유의 기고에 따른 후기 불로유를 마시고 바른지 어언 4개월이 된다. 비교적 건강한 편이어서 체험담은 별로 남길 게 없으나 불로유가 좋다는 느낌은 많이 받았다. 그래서 불로유를 먹은 지 3개월 만에 산문 5편과 시 1편을 쓸 수가 있었다. 산문은 모두 검경합동신문에 게재가 됐다. 이제 쓰는 것은 후기로 보면 될 것 같고 여기엔 두 가지가 내포돼있다. 하나는 불로유에 대한 소감이고 다른 하나는 불로유에 대한 후담이다. 후담은 내가 바라는 희망사항이기도 하다. 불로유가 화제의 중심에 서게 되면서 한마디 하고 싶은 말이 있다. 불로유가 암흑물질인 통일장으로서 신비의 물질임은 현재 과학적으로 입증이 됐다는 사실이다. 신의 작품을 과학적으로 입증이 됐다라고 하면 격에 맞지 않은 것 같아 말을 하기가 무척이나 조심스럽다 그러나 그렇게라도 해야 사람들의 맘을 움직일 수가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불로유는 대체 어떤 물질이며 왜 과학자들이 알 수 없는 통일장일까. 불로유는 왜 인간의 노력으로는 규명이 되지 않을까. 불로유는 왜 신의 영역일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불로유에 대한 참여자가 갈수록 늘어만 갈까. 이를 알기 위해선 허경영의 존함과 그의 사진이 불로유와의 관계를 신인으로부터 듣는 것이 중요하다. 불로유가 없었다면 이의 상관관계를 들추려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불로유가 출현한 이상 신인의 말에 귀를 기우리지 않을 수가 없다. 그는 말한다. 허경영의 존함과 그의 사진은 암흑에너지고 불로유는 암흑물질이며 전자가 있기 때문에 후자가 있다는 것을. 우린 이를 무겁게 받아들여야한다. 신인은 불로유를 완전식품이라 했다. 나의 경우지만 첨엔 이 말을 듣고 반신반의했다. 약품이든 아니든 인간이 만든 것 중엔 부작용이 있는 게 엄청 많다. 그러나 불로유는 전혀 그렇지 않다. 먹고 발랐지만 지금까지 나나 너나 다른 사람 할 것 없이 어떤 부작용도 발견되지 않았다. 불로유는 그야말로 신비의 명약이란 말이 실감 있게 들린다. 그러고 보면 불로유는 완전약품이라 해도 틀린 말은 아니다. 불로화의 대표 격인 불로유는 짧은 기간 안에 사람들에게 많은 걸 보여줬다. 불로화의 첫발이 불로유다. 불로유는 오메가이다. 천부경의 일시무시일 일종무종일과 뜻을 같이 한다. 신인으로부터 들어서 알지만 불로유는 모든 것을 기억하는 암흑물질이다. 불로유는 사람과 소통이 되기도 한다. 누가 무슨 말을 하는 지 다 알아듣는다. 그러니 말과 행동을 함부로 해선 안 된다. 적어도 축복을 받은 사람이라야 제대로 된 불로유를 만나 볼 수가 있다. 허경영을 불신하면 약효있는 불로유를 만들 수가 없다. 이게 눈에 안 보이는 영파의 힘이기도 하다. 지금 불로유에 대한 체험담이 줄을 잇고 있다. 많은 체험 사례가 불로유의 위력을 말해준다. 그간 유튜브를 통해 알았지만 체험을 리얼하게 표현하고 있는 이가 수도 없이 많다. 이의 사례를 알기 위해 인터넷을 검색해봤다. 체험을 망라한 글이 한눈에 들어왔다. 어떤 자료는 27개 분야를 일목요연하게 다루고 있었다. 2023.3.4 네이버의 블로그에 올려진 ‘엘리 건트 앤’이 그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글귀 하나가 눈에 와 닿는다. 바로 ‘허경영 불로유 국민 다 살린다.’란 대목이다. 마치 33정책의 하나인 국민배당금과 쌍벽을 이루는 같아 공감이 간다. 위의 체험담과 별도로 감동을 준 게 있다면 이미 유튜브를 통해 알려진 바와 같이 백혈병의 사례라 할 수 있다. 환자의 남편은 수기와도 같은 훌륭한 글을 남겼다. 한편의 드라마를 보는 것처럼 감동이었다. 허경영 신인께서도 강의시간을 기해 낭독이 있었지만 이 수필가의 수필은 감명 그 자체였다. 그의 아내가 겪은 백혈병이 그의 남편에게 명문의 작품을 남기게 했다. 부부는 일심동체여서인지 그분 내외의 부창부수가 돋보인다. 글은 감동을 이끌어낼 수가 있어야 한다. 글쓴이는 사람들에게 감화를 주고 있고 그래서 사람들은 감격해할 수밖에 없다. 불로유에 대한 체험이 쇼킹할수록 글이 주는 의미 또한 크다. 내가 만약 그분의 입장이었다 해도 그랬을 것이다. 누구나 당하고 보면 그런 절박한 글이 나오게 돼있다. 위에서도 언급했지만 글의 흡인력은 상상을 초월한다. 그래서 이와 연계하여 후담으로 이런 걸 구상해봤다. 불로유에 대한 글을 여러 편 쓴 사람으로서의 신인께 드리는 간절한 소망이랄까. 하늘궁에서 불로유에 대한 수기 등을 전 국민을 상대로 현상공모를 하면 어떨까해서다. 그리고 지식인을 상대로 논문 공모도 병행했으면 좋을 것 같다. 불로유는 영적인 산물이다. 따라서 허경영의 존함과 그의 사진이 없으면 그 어떤 경우에도 만들 수가 없다. 사람들은 짧은 기간이지만 불로유의 존재를 확인했고 신비함을 경험했다. 이런 좋은 기회가 일찍이 있었던가. 불로유를 공론화함에 있어 문제될 게 없다. 오히려 명분이 되고 보면 영적인 것에 눈을 돌릴 때도 됐다. 내가 후담으로 공모에 방점을 두는 것도 이유가 여기에 있다. 공모는 불로유의 공감대 형성에 있어 매우 중요하다. 불로유에 대한 공모는 상대적으로 홍보에 박차를 가할 것이고 그렇게 되면 좋은 체험사례들이 쏟아져 나올 것이다. * 김차웅 : 검경합동신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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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의 등불이 될 백궁소원석말만 들어도 가슴 뭉클하고 호기심을 자아내게 하는 인류 역사상 전무후무한 백궁소원석. 이 소원석은 경기도 양주시 장흥면 석현리의 하늘궁에 위치해있다. 인류를 위해 마련한 이 불멸의 소원석은 어떻게 하여 영산 영지로 알려진 이곳에 조성하게 됐으며 어떤 의미를 담고 있는가가 세인의 관심을 끈다. 하늘궁에 거처하는 본좌의 말에 따르면 ‘백궁소원석은 UFO(비행접시)로 운반돼 동남아와 가까운 태평양 바다 속에 3년3개월간 숨겨져 있다 동원된 수백 명의 잠수부에 의해 끌어올려졌으며 세관을 거치는 등 우여곡절 끝에 국내로 반입됐다.’라고 한다. 백궁석은 2022.5.25 오후 5시경 비가 오는 가운데 국내에서 제작된 기단석과 함께 기술진에 의해 예정된 수순에 따라 정상적으로 설치가 됐다. 예사로운 돌이 아닌 백궁석이 지구에 도착하기까지의 과정은 구체적으로 공개되지 않아 미스터리로 남아있다. 본좌가 비밀에 붙이고 있는 것은 분명 이유가 있을 것 같다. 지구인의 눈높이에 맞추다보니 지금으로선 한계가 있다고 봐야할 것이다. 백궁석을 짠물에 잠기게 하려면 우리나라의 연근해가 충분함에도 불구하고 멀리 떨어진 태평양을 택한 이유는 뭘까. 우리나라는 저인망식의 어선이 많아 이들에 의해 쉽게 노출될 것이기 때문에 어선들이 거의 드나들지 않는 지역을 택할 수밖에 없었으며 백궁석을 오랫동안 바다에 잠재웠던 것은 지구에 잘 적응해야 자외선을 견딜 수가 있고 그렇게 해야 만이 변질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 본좌의 설명이다. 지구가 생성된 이후, 최초로 반입된 백궁소원석. 소원석의 진원지인 백궁은 도대체 어디에 위치할까. 시공을 초월한 이데아의 세계이자 천국인 백궁은 하늘궁을 찾아 본좌를 알현하는 등의 선택된 자만이 갈 수가 있는 곳으로서 지구로부터 120억 광년이나 떨어진 거리에 있다한다. 여기서 하나 아쉬움이 있다면 외계에 백궁이 있고 백궁석이 그곳에서 왔다는데 대해 사람들이 도무지 믿으려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그렇지만 시간이 거듭되고 백궁석이 화제가 되면서 수치 등에 대해 궁금해 하는 사람이 점차 늘어나고 있는 것은 앞으로서의 추이로 볼 때 좋은 계기로서 고무적인 현상이 아닐 수 없다. 문제는 본좌의 유튜브를 시청한 사람이면 몰라도 대부분의 사람은 잘 모른다는데 있다. 이해를 돕기 위해 이의 재원을 나열해본다. 너비가 5.5미터인 백궁석의 높이는 3.3미터이고 무게는 무려 33톤에 이른다고 한다. 숫자 33은 본좌의 한문 이름의 획수이기도 하다. 그러고 보면 백궁석이 바다에 있었던 기간인 3년3개월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백궁석을 받쳐주고 있는 5단으로 된 기단석을 살펴본다. 기단석은 5백궁의 각 계층을 상징하며 2단과 4단에 각각 한글로 된 글자가 새겨져있다. 2단엔 ‘백궁소원석은 백궁 천국에서 왔습니다.’라 돼있고 4단엔 ‘하늘궁 백궁소원석’이라 적혀있어 돌의 출처와 용도를 한꺼번에 읽을 수가 있다. 백궁소원석은 도대체 어떤 돌일까. 백문이불여일견이라 했으니 하늘궁을 찾아 본좌를 알현하고 백궁석의 설명을 듣거나 자세히 살펴보면 많은 것을 알게 될 것이다. 본좌 친견의 분신인 백궁석은 무지몽매한 사람들에게까지 많은 메시지를 전해주고 있다. 수석계에서 보듯 수석엔 문양석, 산수경석 등이 있다. 백궁석은 색채와 무늬가 특이하여 이런 돌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또한 백궁석은 군데마다 요철로 된 부분이 있고 채색이 완벽하여 상상을 초월한다. 백궁석을 자세히 살펴보면 왕관을 쓰고 있는 본좌의 모습이 있는가하면 아기의 탄생과 이를 지켜보는 부모의 모습이 보이기도 한다. 어떤 사람은 성모마리아와 코끼리의 형상으로도 보는 등 다양한 모습으로 비춰지고 있는 전설적인 백궁소원석. 폭포수와 같은 시원한 물줄기가 있는가하면 세 개의 봉우리가 마치 천부경에서 말하는 천과 지 그리고 인을 아우르고 있는 것 같아 의미가 깊다. 백궁석에도 백궁이 표시돼있다. 백궁석의 뒷면, Y자 표시의 위가 백궁이라 한다. 빛과 보석덩어리라 할 수 있는 백궁석은 상징적인 것이 많고 작품 자체가 기하학적이고도 형이상학적이어서 경이롭기 그지없다. 백궁석의 특징은 파도처럼 여울진 선이 끊이질 않고 길게 연결돼있다는 점이다. 선을 길이로 재면 수치상으로 엄청나다. 어찌 신비스럽다 하지 않겠는가. 백궁석에서 보듯 머나먼 우주에서 지구에 돌이 반입된 것은 흔한 일이 아니다. 지금까지 인류가 마주해온 돌을 음미해본다. 인류는 지구에 인류가 출현한 때로부터 돌을 신앙 내지는 외경의 대상으로 신성시해왔다. 선사시대만 해도 알려진 바와 같이 정령신앙이 횡행했다. 그러나 백궁석은 일반석이 아니어서 불교신앙의 대상인 석탑과 차원이 다르다. 하늘궁의 초종교적인 상징물이 백궁석이다. 백궁석의 앞과 뒤를 보면 바탕이 형상화돼있어 인류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소원석은 백궁의 축소판이라 할 수 있다. 백궁석은 알면 알수록 신비감을 자아낸다. 돌이 가지고 있다는 에너지 때문이다. 백궁이 아니면 이런 작품을 창출해낼 수가 없다. 그래서 그런지 신령스런 소원석 앞에서 정중히 빌면 돌에서 나오는 우주에너지의 영향을 받아 소원이 이뤄진다고 하며 일부 참배객의 경우, 기도를 한 결과 눈과 팔이 좋아졌다는 등의 영험담도 있는 반면 소원석을 향해 함부로 상스러운 말을 했다가 차마 믿기 어려운 낭패와 불상사를 입은 사례까지 있고 보면 그냥 봐 넘길 돌이 아니다. 백궁의 정거장이라 불리는 세계적 순례지인 하늘궁에 이처럼 소원석을 설치함에 따라 하늘궁이 본격적으로 백궁과 소통할 수 있는 통로가 마련됐다. 이로써 백궁에 대한 관심도가 두드려졌고 백궁과도 가까워졌다. 이제부터 인류는 백궁에 갈 연습을 해야 한다. 이의 지렛대가 백궁소원석이다. 인류는 오랫동안 머나먼 우주 공간에서 떨어진 별똥별이란 운석을 많이 접해 왔다. 운석은 끊임없이 떨어지고 있고 지구 곳곳에서 발견되고 있다. 그러나 백궁석은 백궁에서 건네진 것이고 보면 운석과 사뭇 결이 다르다. 운석의 값어치는 금의 10배 또는 40배에 이른다고 한다. 언론이 고의든 아니든 설령 침묵한다 해도 백궁석이 지구에 모습을 드러낸 이상, 이의 존재는 입을 통해 머잖아 인류의 화두로 등장하게 돼있다. 그래서 하는 말이지만 앞으로 세계인이 알면 백궁석에 대한 연구가 활발하게 진행될 것이고 그렇게 되면 세계유형문화유산으로도 등재가 될 것임은 너무도 자명한 사실이다. 인류의 등불이 될 환상적인 꿈의 백궁소원석. 가치는 얼마나 될까? 정확히 말해 가격이 없고 이를 정할 수가 없다는 게 맞을 것 같다. 왜냐하면 인간이 절대적 에너지를 가진 신성한 돌에 대해 가격을 운운한다는 자체가 너무나도 잘못됐기 때문이다. 불경이지만 굳이 가격을 말해본다면 어림잡아 조 단위 이상은 되지 않을까란 생각을 조심스레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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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로 보존돼야할 원전 고리1호기원전 고리1호기는 수명을 다해 현재 해체 수순을 밟고 있다. 1971.11.15 착공됐고 1978.4.29 상업운전에 들어갔다. 원전이 가동된 지 약 40년 만인 2017.6에 폐로가 결정됨으로써 상업운전이 영구 중단됨과 동시에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되돌아보면 1호기는 그동안 수명연장을 두고 찬반에 휩싸이는 등 많은 우여곡절을 겪었다. 원전의 설계수명은 60년이나 내용연수는 30년으로서 안전에 대한 심의 결과에 따라 10년이 연장됐을 뿐이다. 설계수명대로라면 20년을 더 연장할 수 있었으나 부실한 부품의 교체 등으로 인한 과제를 안고 있었고 지역민과 환경단체로부터 완강한 수명연장 반대 등의 저항에 부딪쳐야만 했다. 이런 물리적인 변수가 생기면서 해체의 기간이 앞당겨졌다. 만드는 것만큼 어려움이 있다는 원전 해체. 고리1호기는 꼭 건축물까지 해체를 해야만 하는가. 고리1호기만큼은 국보급의 유형문화재로 지정하거나 등록문화재로 등록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 같아서 하는 얘기다. 이렇게 말하면 어떤 사람은 방사선 물질의 산실인 원전의 시설물을 문화재로 할 수 있느냐며 의아해할 수도 있다. 그리고 원전 관계자들 역시 현재 원전해체연구소까지 발족돼 고리1호기의 시설물 일체를 향후 15년간 비용 약 1조원을 들여 완전 해체하고 부지를 복원한다는 계획이고 보면 문화재의 지정을 탐탁하게 여기지 않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원전의 안전성을 저해하는 요인만 제거하면 얼마든지 문화재가 될 수 있고 상당한 비용을 절감할 수도 있어 이에 대한 심도있는 검토가 요구된다. 문화재 지정은 그 대상이 얼마만큼 역사적, 학술적, 예술적 가치가 있느냐에 달렸음으로 설사 용도가 원전이었다 해도 차별을 둘 이유는 없다. 고리1호기는 근대 산업의 표상이며 상징적인 문화유산이라 할 수 있다. 우리나라의 원전 건축물로선 최초이고 경제발전의 원동력이며 건물형태가 돔 식이어서 문화재로선 손색이 없다. 그렇다면 시설물의 안전조치를 완료한 다음 문화재심의위원회의 심의를 받아볼 필요가 있다. 고리1호기는 튼튼하게 지워졌다고 한다. 내구성이 우수한 건축물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완전해체보다 보존 쪽이 돼야하며 그러기 위해선 리모델링을 하는 등 노후화와 진부화를 막는 일이 중요하다. 아무리 원전이 위험의 상징이라 해도 건축물만은 해체가 능사가 아니다. 방사능 유출만 없으면 일반 건축물과 다를 바 없기 때문이다. 고리1호기는 학생들이 견학을 하거나 일반인의 볼거리로 활용하는 공간이 됐으면 한다. 그렇게만 되면 가동 중인 원전을 굳이 찾아다니며 관람할 필요가 없다. 일반 건축물로서 문화재가 된 사례를 살펴본다. 국보로 지정된 문화재로는 사적가치가 큰 숭례문, 근정전 등이 있다. 그리고 충남 옛 공주읍사무소는 일제강점기에 건립된 건축물로서 얼마 전, 국가등록문화재로 등록됐다. 일제강점기 도시의 도심구조와 형태를 알 수 있는 사료로서의 가치가 높았다는 게 이유였다. 원전 시설의 대표 격인 고리1호기에 대한 문화재청의 반응이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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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경영과 불로유 그리고 통일장불로유를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허경영이 있으면 불로유가 있고 불로유가 있으면 통일장이 있다는 사실에서 찾아야할 것 같다. 허경영의 이름만 불러도 에너지가 나와 물질에 반응을 한다. 그리고 허경영의 이름과 사진에서도 에너지가 나와 물질에 변화를 준다. 여기서 탄생된 것이 불로유고 통일장이다. 그렇다면 이 엄청난 사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할까. 인류에게 이런 과제가 줘졌다니 기적과도 같다. 불로유의 출현은 이 시대에 있어 경천동지할 사건이다. 왜 사건이라고 일컫는가. 사람들은 사건이라 하면 일단은 나쁜 쪽을 생각하기 쉽다. 이는 문제에만 초점이 모아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알고 보면 좋은 쪽에도 있다. 불로유처럼 사회적으로 관심을 끌면 그 자체만 해도 사건이 된다. 불로유의 기여도는 역사가 말할 것이고 인류의 종말이 올 때까지 불로유의 활용은 계속될 것이다. 세상은 하루가 다르게 불로유로 들떠있다. 지금으로선 상상의 나래지만 불로유가 통일장임을 알면 큰 파장을 몰고 올 것임은 명약관화하다. 그렇게 되면 나라마다 불로유를 연호하게 돼 환희로 가득하고 축배의 소리가 수레바퀴 굴러가듯 요란할 것이다. 그 뿐이겠는가. 지구촌은 온통 불로유의 축제로 북적일 것이다. 이게 앞으로 펼쳐질 불로유의 현주소다. 불로유의 매력을 어떻게 말로 표현할 수가 있을까. 더 이상 물어볼 필요가 없다. 지금부터 허경영의 이름과 사진이 세상을 지배할 것이고 지구의 모든 공간을 꽉 메울 것이다. 인간의 영육을 지배하고 영혼을 사로잡을 불로유. 불로유가 세상을 구할 줄 누가 알았겠는가. 불로유는 시대가 낳은 산물이다. 인류는 불로유의 정체가 뭣이냐고 물을 것이다. 불로유를 가져다준 허경영은 이를 설명하기 위해 물리학에서 숙제로 남겨져있던 통일장을 보여줬다. 그는 불로유가 물질의 총화이며 그게 바로 통일장이라 하였다. 그렇기 때문에 학계의 관심사가 될 수밖에 없다. 통일장은 뭣인가. 그가 말하는 암흑물질이다. 암흑물질을 구성하고 있는 암흑파는 누구도 포착하지 못한다. 본 사람도 없고 볼 수도 없다. 빛도, 무게도 없고 잡히지도 않는다. 암흑물질의 근원인 암흑파는 무슨 파동이냐 하면 영파를 말한다. 암흑파는 과학으로 증명이 안 되며 인간이 말하는 파동과 다르다. 무한대의 파동이 허경영의 영파다. 영파가 암흑에너지다. 허경영의 이름에서 허경영의 사진에서 암흑파를 만들어낸다. 허경영만 불러도 암흑파가 된다. 어떤 과학자도 암흑파를 포착할 수가 없다. 불로유는 말을 해도 알고 맘만 먹어도 읽는다. 불로유는 일반물질이 아니다. 물질이 허경영을 알아본다. 허경영의 이름이 붙으면 백궁의 물질이 된다. 세상의 모든 언어가 통한다. 이게 통일장이다. 입자인 물질, 파동인 에너지. 물질과 에너지는 같다. 물질이 에너지고 에너지가 물질이다. 우린 물질과 에너지는 하나란 사실에 주목해야한다. 우리가 암흑물질, 암흑에너지와 마주하게 된다는 것은 엄청난 행운이다. 몸의 유전자를 변화시킨다는 불로유. 인간은 불로유로 인해 과학이 못다 푼 이론까지 눈을 뜨게 됐다. 불로유를 먹으면서 통일장을 알려고도 하지 않거나 모른 척하며 신인을 부정함은 말이 안 된다. 불로화는 허경영이 인간에게 준 크나큰 선물이다. 우리 곁에 있는 신인은 2022년도에 들어와 인류에게 신비의 물질인 불로유를 먹게 했다. 우린 불로유를 통해 과학으로 규명할 수 없고 신의 영역으로만 비춰진 통일장을 만나보게 됐다. 위에서 사건이라 하였지만 나에게 있어 불로유는 대천사에 이어 두 번째의 만남이다. 이로서 그가 신인임이 명확해졌다. 불로유가 첨으로 선을 보였을 땐 수수께끼나 다름없었다. 정체를 몰랐기 때문이다. 허경영의 말에서 보듯 불로유는 통일장의 상징이어서 답이 그 속에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제 불로유의 정체가 모습을 드러냈다. 물질과 에너지가 하나로 된다는 원리가 통일장이 아닌가. 따라서 통일장은 모든 것이 하나로 통일돼있다. 불로유는 원자번호에 없는 물질이며 통일장의 근거가 된다. 아인슈타인은 이 이론의 완성을 보지 못하고 죽었다. 아인슈타인이 풀지 못한 통일장이론을 불로유가 보여줬다. 이는 허경영이 이뤄낸 쾌거가 아닌가. 우린 허경영에 의해 통일장을 알게 됐다. 그래서 허경영이 신인이란 칭호가 붙을 수밖에 없었다. 불로유의 대가인 허경영은 우주물리학의 최고봉이다. 지금까지의 과학적 지식으론 불로유의 원리를 풀 수가 없다. 불로유시대를 이끌어갈 지도자는 누굴까. 언제나 우리 곁에 있으며 우릴 지켜보고 있는 그가 바로 통일장을 들고 나온 허경영이다. 허경영의 진정한 제자는 누구인가. 불로유를 만들어 먹고 진심으로 고마워하는 사람들이다. 이의 숫자는 앞으로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것이다. 불로유가 생활 깊숙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한 허경영을 제칠 순 없다. 불로유로 인해 난 어느새 신비주의자가 됐다. 허경영을 떠받드는 사람이 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이제 과학자들도 깨어나야 한다. 관심의 대상은 허경영의 암흑물질과 암흑에너지다. 통일장의 이론은 불로유의 원리에 있음을 알아야한다. 그러니까 과학자들은 불로유의 원리를 연구하고 논문을 써야하며 교과서도 새로 만들어야한다. * 김차웅 : 검경합동신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