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11.09 (월)

  • 흐림속초0.0℃
  • 구름많음0.0℃
  • 흐림철원0.1℃
  • 흐림동두천℃
  • 구름많음파주℃
  • 흐림대관령℃
  • 구름많음춘천0.1℃
  • 흐림백령도0.0℃
  • 흐림북강릉℃
  • 흐림강릉0.0℃
  • 흐림동해0.1℃
  • 박무서울℃
  • 흐림인천℃
  • 구름많음원주℃
  • 흐림울릉도0.1℃
  • 흐림수원℃
  • 흐림영월0.0℃
  • 흐림충주0.0℃
  • 흐림서산℃
  • 흐림울진0.0℃
  • 흐림청주0.0℃
  • 흐림대전℃
  • 흐림추풍령0.0℃
  • 흐림안동0.1℃
  • 흐림상주0.0℃
  • 흐림포항0.0℃
  • 흐림군산℃
  • 흐림대구℃
  • 흐림전주℃
  • 흐림울산℃
  • 흐림창원0.0℃
  • 흐림광주0.0℃
  • 비부산0.0℃
  • 흐림통영0.0℃
  • 흐림목포0.2℃
  • 흐림여수0.0℃
  • 흐림흑산도0.0℃
  • 흐림완도℃
  • 흐림고창℃
  • 흐림순천0.1℃
  • 흐림홍성(예)7.6℃
  • 흐림℃
  • 비제주1.7℃
  • 흐림고산0.0℃
  • 흐림성산6.2℃
  • 비서귀포2.0℃
  • 흐림진주℃
  • 흐림강화0.0℃
  • 흐림양평℃
  • 흐림이천℃
  • 흐림인제0.2℃
  • 구름많음홍천℃
  • 흐림태백℃
  • 구름많음정선군℃
  • 흐림제천0.0℃
  • 흐림보은0.0℃
  • 흐림천안℃
  • 흐림보령℃
  • 흐림부여℃
  • 흐림금산0.0℃
  • 흐림℃
  • 흐림부안℃
  • 흐림임실℃
  • 흐림정읍℃
  • 흐림남원℃
  • 흐림장수℃
  • 흐림고창군℃
  • 흐림영광군℃
  • 흐림김해시0.0℃
  • 흐림순창군℃
  • 흐림북창원0.0℃
  • 흐림양산시℃
  • 흐림보성군0.0℃
  • 흐림강진군℃
  • 흐림장흥0.0℃
  • 흐림해남0.0℃
  • 흐림고흥0.0℃
  • 흐림의령군℃
  • 흐림함양군℃
  • 흐림광양시℃
  • 흐림진도군0.0℃
  • 흐림봉화℃
  • 구름많음영주℃
  • 흐림문경℃
  • 흐림청송군0.1℃
  • 흐림영덕℃
  • 흐림의성0.2℃
  • 흐림구미0.0℃
  • 흐림영천℃
  • 흐림경주시℃
  • 흐림거창℃
  • 흐림합천℃
  • 흐림밀양℃
  • 흐림산청℃
  • 흐림거제0.0℃
  • 흐림남해0.0℃
  • 흐림0.2℃
[황미정 칼럼] 장애인 & 비장애인 '서로가 서로에게 건네는 배려'
  • 해당된 기사를 공유합니다

IT/교육/건강

[황미정 칼럼] 장애인 & 비장애인 '서로가 서로에게 건네는 배려'

우리는 함께 살아간다. 길을 걸을 때도,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도, 같은 공간에서 일을 하거나 공부할 때도, 우리는 서로 다른 환경에서 온 다양한 사람들과 마주친다. 그런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바로 배려이다. 하지만 우리는 흔히 배려를 ‘어려운 처지에 있는 사람을 돕는 것’이라고 좁게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비장애인이 장애인을 돕는 모습이 떠오르거나, 힘든 사람을 위해 무언가를 양보하는 장면을 떠올리곤 한다. 


물론 이런 모습도 배려의 중요한 한 부분이지만, 그것이 배려의 전부는 아니다. 배려는 특정한 누군가를 위해 특별히 베푸는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주고받으며 살아가는 삶의 방식이다.


어느 날, 한 청각장애인 친구와 대화를 나눈 적이 있다. 그는 입 모양을 보며 상대방이 하는 말을 이해하려고 애썼고, 조용한 곳에서 이야기하는 것이 편하다고 했다. 처음에는 그런 그의 노력이 크게 와닿지 않았지만, 가만히 생각해 보니 그것 또한 배려였다. 나와 원활히 소통하기 위해 집중하고 노력하는 그의 모습은, 내가 평소에 그를 배려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과 다르지 않았다. 그 역시 나를 위해 배려하고 있었던 것이다.


또 다른 날, 휠체어를 탄 친구와 함께 길을 걸은 적이 있다. 처음에는 내가 그의 속도에 맞춰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오히려 그가 내 걸음에 맞춰 휠체어를 움직이며 대화를 이어갔다. 나도 모르게 ‘배려는 내가 해야 하는 것’이라고 단정 짓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배려는 일방적인 것이 아니다. 그는 나를 배려하고 있었고, 나도 그를 배려하며 함께 걷고 있었다. 그렇게 서로를 배려하며 우리는 자연스럽게 같은 길을 걸어갈 수 있었다.


이처럼 배려는 특정한 한쪽만이 베푸는 것이 아니라, 서로가 서로를 위해 하는 것이다. 상대방이 나를 위해 배려하는 것이 당연한 것도 아니고, 내가 일방적으로 배려해야 하는 것도 아니다. 우리가 함께 살아가는 세상에서는 누구나 배려할 수도, 배려받을 수도 있는 존재이다.


사실 우리는 배려를 거창하게 생각할 필요가 없다. 기차에서 큰 소리로 통화하지 않는 것, 엘리베이터에서 한 걸음 물러나 다른 사람의 공간을 존중하는 것, 바쁜 친구를 위해 짧고 핵심적인 말로 요점을 전달하는 것, 무거운 짐을 든 사람을 보면 먼저 문을 열어주는 것, 이 모든 것은 작은 배려 행위이다. 이렇게 작은 배려들이 모이면, 우리는 서로가 불편함 없이 공존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 갈 수 있다.


결국, 배려는 ‘서로가 서로에게’ 하는 것이다. 우리가 함께 살아가는 한, 배려는 특정한 사람에게 한정된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태도이다. 나 혼자만 하는 것도 아니고, 나만 받는 것도 아니다. 나도 배려할 수 있고, 나도 배려받을 수 있는 존재임을 인정하는 것, 그것이 바로 진정한 배려의 의미가 아닐까?


우리는 서로 다르지만, 같은 공간에서 함께 살아간다. 그렇기에 배려는 특별한 것이 아니라, 우리가 자연스럽게 주고받는 삶의 일부가 되어야 한다. 서로가 서로를 배려하는 순간, 우리는 더 따뜻하고 조화로운 사회를 만들어갈 수 있을 것이다.


칼럼.jpg







모바일 버전으로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