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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2] 물들어감에 대하여

기사입력 2023.12.04 2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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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차가운 바람에 어깨가 자연스레 움츠려지는 11월이면 어김없이 길가의 가로수들은 붉고 노랗게 물들어 간다. 옷이 두꺼워지는 계절이지만 은행나무가 노랗게 익어 풍성한 자태를 드러내는 모습을 보고 있자면 마음만큼은 넉넉함으로 차오르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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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은지 칼럼리스트>

     

    출퇴근길에 늘 자리를 지키고 서 있는 모과나무 한 그루를 마주하게 된다. , 여름에는 초록빛으로 빛나던 나무는 여름이 끝나고 가을이 오는 시기가 되면 열매가 노랗게 익어 은은한 향기를 품어낸다. 가을의 끝자락인 지금은 무성한 잎들이 노랗게 물들어가고 있다. 곧 이 잎들도 떨어지겠지만 다가오는 봄에는 초록빛 나무를 다시 만나게 될 수 있으리라 기대하게 된다.

     

    한 나무가 계절에 따라 스스로 변화하고 있다. 예전 같으면 크게 신경 쓰이지 않았을 너무나 자연스러운 현상이었겠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이러한 변화들에 새삼스레 경이로움을 느끼게 된다.

     

    가을이 되면 나무는 추운 겨울을 나기 위해 엽록소의 생산을 중단하고 잎을 떨어뜨려 수분과 영양분이 빠져나가지 않도록 준비를 한다고 한다. 식물의 잎에는 녹색의 엽록소와 노란색의 카로티노이드, 붉은색의 안토시안이 녹아있는데 해가 길고 온도가 높을 때는 엽록소가 합성을 하며 녹색을 띠지만 기온이 낮아지고 해가 짧아지는 가을이 되면 영양분과 수분의 공급이 중단되면서 엽록소가 합성을 멈추게 된다. 이때 잎 속의 엽록소는 줄어들고 카로티노이드와 안토시안이 분해되면서 노란색과 붉은색의 단풍으로 물들게 된다. 여름에는 적당한 온도와 빛으로 광합성을 활발히 하던 나무는 녹색 잎으로 무성해지지만 빛이 줄고 온도가 낮아지는 가을이 오면, 에너지 소모를 줄이는데 이 과정에서 나뭇잎은 붉고 노랗게 변화하는 것이다.

     

    어쩌면 단풍이 든다는 것은 우리의 시각에서 보면 나무가 옷을 갈아입듯 아름답게 보이지만 나무에 있어서는 생존, 잘 살아가기 위한 전략일지도 모르겠다. 나무는 환경의 변화를 인정하고 지속 가능한 삶을 위해 스스로 노력하고 있는 것이다.

     

    노랗게 익어가는 나무들 사이를 걸으며 생각하게 된다. 나도 나무처럼 물들어 갔으면 좋겠다. 나무가 잎의 색을 바꾸어 불필요한 것들을 덜어내며 환경의 변화에 적응을 하며 물들듯 나도 그렇게 은은하게 나이가 들었으면 한다.

     

    어린 시절, 한창 꾸미고 치장하는데 열정이 넘쳤다면 불필요한 것들을 비우고 나에게 필요한 것들로 채우고 싶다.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인정하고 그 모습을 있는 그대로 바라봐 주는 사람들과 함께 하고 싶다. 옳고 그름의 시시비비를 따지기보다 서로의 다름을 존중하고 싶다. 모든 대상에 관심을 가졌던 에너지를 줄이고 가끔은 조용한 침묵을 선택하고 싶다. 지금의 나. 자신을 인정하고, 자기다움이 무엇인지를 헤아릴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나이가 들수록 깊이를 더하며 성장하고 싶다.

     

     

    모든 잎이 꽃이 되는 가을은 두 번째 봄이다. - 알베르 카뮈

     

    흐르는 시간 속에 나무는 자신만의 계절을 만들며 살아간다.

    점점 자기다워지는 것이다. 푸른 초록빛을 띄며 생기를 불러일으키기도 하고 은은한 단풍으로 물들기도 한다.

     

    우리의 삶도 그러한 것이 아닐까 한다.

    단풍처럼 물들어가는 것, 익어간다는 것은 변화를 하고 있음을 증명하는 것이다.

     

    노랗고 붉은 단풍이 만연한 계절이 가기 전에 잠시라도 은행나무, 단풍나무 아래를 걸어보면 좋겠다. 그리고 그 속에서 스스로의 삶을 여유와 넉넉함으로 채워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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