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1.27 (월)

  • 구름많음속초3.7℃
  • 눈-2.1℃
  • 흐림철원-2.1℃
  • 구름많음동두천-1.6℃
  • 구름많음파주-0.4℃
  • 구름많음대관령-4.1℃
  • 흐림춘천-1.4℃
  • 눈백령도-1.5℃
  • 구름조금북강릉4.9℃
  • 구름많음강릉5.0℃
  • 구름많음동해8.2℃
  • 구름많음서울1.0℃
  • 맑음인천0.7℃
  • 흐림원주-1.0℃
  • 구름많음울릉도7.6℃
  • 눈수원-0.6℃
  • 흐림영월-1.1℃
  • 흐림충주-1.3℃
  • 구름많음서산0.6℃
  • 흐림울진6.0℃
  • 눈청주0.7℃
  • 눈대전-0.5℃
  • 구름많음추풍령-0.8℃
  • 흐림안동1.2℃
  • 구름많음상주2.1℃
  • 비포항4.2℃
  • 구름많음군산0.5℃
  • 흐림대구3.0℃
  • 구름많음전주1.0℃
  • 흐림울산4.9℃
  • 구름많음창원4.7℃
  • 구름많음광주2.4℃
  • 구름많음부산4.6℃
  • 구름조금통영5.7℃
  • 구름많음목포0.9℃
  • 구름많음여수4.2℃
  • 흐림흑산도1.7℃
  • 구름조금완도4.5℃
  • 구름많음고창0.2℃
  • 구름많음순천1.6℃
  • 구름많음홍성(예)0.0℃
  • 흐림1.1℃
  • 구름많음제주5.0℃
  • 구름많음고산5.4℃
  • 구름많음성산4.7℃
  • 구름조금서귀포7.1℃
  • 구름조금진주6.0℃
  • 구름조금강화0.5℃
  • 흐림양평0.2℃
  • 흐림이천0.2℃
  • 흐림인제-0.6℃
  • 흐림홍천
  • 흐림태백-0.6℃
  • 흐림정선군-2.3℃
  • 흐림제천-1.9℃
  • 구름많음보은0.1℃
  • 구름많음천안1.3℃
  • 흐림보령0.3℃
  • 구름많음부여1.3℃
  • 흐림금산-0.4℃
  • 구름많음-0.1℃
  • 흐림부안1.2℃
  • 흐림임실-0.3℃
  • 구름많음정읍0.8℃
  • 흐림남원1.0℃
  • 흐림장수-1.6℃
  • 흐림고창군0.7℃
  • 흐림영광군0.8℃
  • 구름많음김해시5.2℃
  • 구름많음순창군1.2℃
  • 구름많음북창원5.5℃
  • 흐림양산시4.8℃
  • 구름많음보성군4.5℃
  • 구름많음강진군4.1℃
  • 구름많음장흥3.6℃
  • 구름많음해남2.8℃
  • 구름많음고흥3.6℃
  • 구름많음의령군5.9℃
  • 구름많음함양군1.8℃
  • 구름많음광양시3.9℃
  • 구름많음진도군3.6℃
  • 흐림봉화0.3℃
  • 흐림영주0.0℃
  • 흐림문경0.7℃
  • 흐림청송군0.6℃
  • 흐림영덕2.5℃
  • 흐림의성2.3℃
  • 구름많음구미5.5℃
  • 흐림영천2.4℃
  • 흐림경주시2.8℃
  • 구름많음거창0.8℃
  • 구름많음합천5.5℃
  • 구름많음밀양6.2℃
  • 구름많음산청2.2℃
  • 구름많음거제4.5℃
  • 구름많음남해4.4℃
  • 구름많음6.1℃
공주시, 10월의 역사 인물 '독립운동가 이철영' 선정
  • 해당된 기사를 공유합니다

지역뉴스

공주시, 10월의 역사 인물 '독립운동가 이철영' 선정

공주시, 10월의 역사 인물 \'독립운동가 이철영\' 선정

 

공주시는 구한말 최고의 유학자이자 일제에 항거한 독립운동가 이철영 선생을 10월의 역사 인물로 선정했다.

30일 시에 따르면, 1867년(고종 4) 공주의 중동골(현 상왕동)에서 태어난 이철영 선생의 기호유학의 대표적인 유학자인 초려 이유태 선생의 9대손이다.

선생은 어린 시절 어려운 형편에도 불구하고 학문을 익히는 일을 게을리하지 않았으며, 선조인 이유태 선생의 유업을 계승하고 알리기 위해 노력했다.

1905년 을사늑약이 체결되고 러일전쟁이 발발하면서 일제가 조선인들을 강제로 징병하려고 하자 선생은 ‘기의려문(起義旅文)’을 지어 의병을 모집, 이에 대응하고자 하였으나 뜻을 이루지는 못했다.

1909년에는 일제가 호적 신고를 강요하자 “죽어서 조선의 귀신이 될지언정 살아서 일본의 백성이 되지는 않을 것이다.”라고 하며 끝까지 호적 신고를 거부했다 .

이어 일본의 만행을 통렬히 비난하는 ‘치일국정부서(致日國政府書)’,‘재치일국정부서(再致日國政府書)’를 일제에 보내고자 부여주재소에 전달했다.

선생은 일제의 모든 명령을 거부해 수차례 체포되어 옥고를 치루고 선영 등을 수탈당하기도 했지만 끝까지 선비의 기개를 잃지 않고 일제를 꾸짖었으며 일본 경찰도 선생을 일등대남자라고 존경을 표했다고 전해진다.

잦은 옥고로 인한 후유증으로 선생은 1919년, 53세의 나이로 순국했으며, 항일 독립운동 공적을 인정받아 1977년 대통령 표창,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고, 1971년에는 상왕동 숭의사*에 배향돼 매년 선생을 기리고 있다.

저술로는 ‘성암집(醒菴集)’, ‘내범요람(內範要覽)’과 옥중일기인 ‘부풍일기(扶風日記)’ 등이 전해지고 있다.

김정섭 시장은 “공주 중동골에서 태어나 선조인 초려 이유태 선생의 학문을 계승한 구한말 최고의 유학자이자 일제에 항거했던 독립운동가인 이철영 선생의 삶과 업적을 기리기 위해 10월의 역사인물로 선정했다”며, “오는 10월 17일 공주기독교박물관에서 이철영 선생 관련 학술세미나를 시민을 대상으로 개최할 예정이다”고 말했다.




모바일 버전으로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