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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을 알리는 자랑스런 한국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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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을 알리는 자랑스런 한국인

캡처.JPG

 

1970년 4월 12일 전라남도 화순군의 아주 깊은 두메 산골 마을에서  1남 5녀 중 차녀로 태어났다. 

어려운 형편 속에서도 선하기 그지 없는 부모님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성장한 홍연주씨는 지인의 소개로 지금의 남편을 만났다고 전했다. 

 

결혼 후 남편을 따라 일본에 온 것이 1995년 10월이었고 

벌써 27년 째  만 52세가 되었다고 한다. 

 

첫 발을 내린 곳이 일본의 동북 지역 아오모리현 이였다고 말을 이어갈 다. 

겨울이면 산 처럼 눈이 쌓이고 매일 그칠 줄 모르고 휘날리는 눈발은 나의 동심을 여지없이 무너뜨렸다. 어린시절 눈이 오면 깡충깡충 뛰어 놀았던 추억은 그저 깊은 추억으로 접어 둬야 했다. 눈이 지겨울 정도로 치워도 치워도 쌓이니 말이다. 때론 빙판 길을 달리다 사고를 당한 적도 있고 하얗게 뒤덮힌 도로와  논밭이 구별이 되지 않아 논두렁에 빠져 렌터카를 불러야 했던 적도 있났다고 했다. 

그 추운 곳에서 시할머니와 시부모님 거기에다 시아주버니, 아이들 4대가 함께 살았다고 하였다. 

 

일본말도 제대로 못하고 문화와 풍습이 다른 이곳에서 일본인 며느리는 엄두도 내지 못하는 시부모님을 모시고 12년을 함께 살았다고 말했다. 

 

치아가 성하지 못한 시할머니가 드실 음식과,취향이 다른 시부모님의 음식을 중심으로 하다보니 정녕 성장할 아이들은 챙겨주지 못할 때도 많았다. 그리고 경제적인 사정도 그리 풍족하지는 못했지만 나름 행복하게 열심히 살았다고 했다. 

그런 어려운 환경에서도 4남 1녀를  낳았으니 자칭 일본의 애국자이기도 하다. 남들은 말한다. “부부 금술이 얼마나 좋으면 그렇게 아이를 많이 낳느냐고“ 얼굴에 웃음이 저절로 우러 난다고 수줍게 말했다 다. 

그렇게 12년 동안 시부모님을 모시며 아이들을 낳고 한국 며느리로 아내로 엄마로 나름 충실하게 열심히 살았다고 전했다. 

 

한국인의 부모를 모시는 생활과 일본인들의 모습은 너무 많이 달랐다고 했다. 일본에서는 조금만 노력해도 티나게 잘하는 한국 며느리가 되었고 한국의 부모 공경의 문화가 돗보이는 문화적인 차이점이기도 하였다고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 

 

이후 남편의 일로 지금 살고있는 아이치현(나고야)  도요타시에 삶의 터전를 옮겼는데 세계 일등 도요타 자동차라 자부하는 그 도요타본사와 공장들이 즐비하게  늘어선 곳이라고 전했다. 

 

 당시에 막내딸이 아직 어린 나이였지만, 이 곳 아이치현에 이사를 온 후에 사회의 봉사활동에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아이들도 어느정도 성장하였고 일본에 살다 보니 없던 애국심이 끌어 올랐다고 했다. 

재외국민 재외동포 뉴-커머 이방인 취급을 받고 있는 우리도 자랑스런 한국인이란 자부심이 마음 깊숙한 곳부터 솟아나며 한국을 알리고 싶은 마음이 꿈틀거렸다고 말하는 그녀는 애국자이기도 하다. 

 

 항상 자랑스런 한국인이란 강한 의지와 자부심과 자존심을 가지고 내 얼굴에 한국이란 간판을 부치고 어떻게 한국을 알릴까 고민하다 한국어 교습 과정을 공부하고 한국어 강사를 시작했고 한국어를 가르치다 보니 한국 문화와 직접 연결되는 것이 요리임을 깨닫게 되면서  한국 사람도 어려워하는 김치 교실을 열어 가르치기 시작했다고 한다.

 

 매년 겨울이면 때론 어떤 단체에서, 때론 초등학교에서 개인에서 초청을 받아 출장 강습을 나가기도 한다고 자랑스럽게 말했다.

 그러던 중 재일본중부 한국인연합회에 회원으로 등록을 하면서 활동을 시작했고, 그것도 벌써 8년이 되어 중부한인회 임원으로서 부회장 역활을 맡아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전했다. 

지금까지  공공외교 재일한국인 봉사활동을 하면서 가장 크게 기억에 남는 것은 재외공관 나고야 총영사관과 나고야 민단과 한인회가 협력하여 실행한 “한국 페스티벌“축제라고 말했다. 

대형 인원 150~200명 분의 대형 비빔밥 퍼포먼스는 놀랄만한 역사에 기록할 이벤트로서 빅쇼있다고  자랑스럽게 말했다. 대형 비빔밥 판을 짜고 대형 주걱을 주문해 만들고 무대위에 선을 보이고 한일교류를 위한 민간공공외교 차원에서 일본인 관객과 함께 비빔밥을 비볐던 그 때를 잊을수 없다라고 하면서 며칠 잠 못이루며 준비하고 한국의 음식 문화의 훌륭함을 전한 뒤의 뿌듯함은 모든 피로를 한방에 날려줬다고 말하면서 흐뭇한 미소와 표정으로 기억을 되살리면서 말을하는 모습이 너무 멋지고 따뜻한 정을 느끼게 했다. 

 

한국어와 요리를 통해 일본인들에게 한국의 문화를 알리는 시간이 정말 자랑스럽고 보람있다고 말하는 홍연주씨는 가끔씩 한국을 무시하는 일본인들의 태도를 접하며 그럴 때마다 한국의 우수함을 더 열성적으로 알린 것 같다고 전했다. 

 

코로나 전까지 매년 한국어를 배우는 학생들을 데리고 한국 투어를 해왔고 지금도 학생들은 한국에 가고 싶어 안달이라고 말한다. 

 

이렇게 아주 작게 한국 아닌 일본땅에서 우리 나라 한국을 그리워하며 작은 애국의 길을 가고 있는 모습이 아름답고 멋진 모습으로 보였다. 

 

지역 사회를 위해 봉사도 하는 개인 홍연주이지만 한국인 홍연주로 자랑스럽게 살아간다고 말하는 그녀는  앞으로도 한국인 홍연주로서 일본인들에게 한국을 알리며 자랑스럽게 살아갈 것이라고 웃이면서 말했다. 

 

일본땅을 깨끗이 하는 클린 운동, 일본에서 태어나 고난 속에서도 한국을 조국으로 여기고 가슴에 품고 살아오신 동포 어른들을 위한 효도 잔치 또한 가슴을 뛰게 한다고 전했다 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많은 것이 제한된 지금이지만 그 안에서 우리가 가 할 수 있는 최선의 길을 찾아 한국어 교실, 김치 만들기와 요리 교실, 한국어 검정시험, 스피치 대회 그리고 한인회 안에서 대외적인 활동을 지속하고 싶다는 속내를 비추기도 하였다. 

 

어쩌면 이런 삶을 위해 일본인과 결혼했고 이 일본 땅에 왔는 지도 모르겠다는 자신감으로 살아가는 홍연주씨는 

아이들도 이제 모두 성장했고 더 자유시간을 갖게 된 지금 더 많은 고민을 한다고 말하면서 앞으로 나는 어떤 콘텐츠로 일본인에게 더 멋진 한국을 심어줄 수 있을까?! 라고 ...... 

한국을 알리는 자랑스런 한국인 아이치현(나고야) 도요하시 

홍연주씨를 만나서 진솔한 대화를 하고 보기드문 어주 멋진 자랑스런 한국인을 만나서 기뻤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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