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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을 말하는 게 잘못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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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뉴스

영성을 말하는 게 잘못인가

신인 허경영은 이성결합이 아닌 영성결합으로 태어났다고 한다. 그가 유아기 때였다. 젖을 그에게 물린 마을의 아낙들이 병마에서 벗어나고 행운이 깃드는 등 하는 일마다 영험함을 입었다는 말도 있었다. 영성은 신비 그 자체여서 예사롭게 들리지 않는다.

 

그는 살아오면서 지금까지 사람들에게 12통 등 많은 기적을 보여주고 있다. 그가 넣어주는 에너지로 많은 사람이 치유되는 효험을 얻기도 하고 축복과 광체를 통해 좋은 일이 생기며 특히 광체의 경우, 불특정 다수를 살리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뿐만 아니다. 그는 사람들에게 대천사를 분양, 크나큰 행운을 안겨주는가 하면 지금은 통일장이라 불리는 불로유까지 만들어 먹게 함으로써 인류의 무병장수에 엄청난 공헌을 하고 있다. 이쯤대면 그가 신인임을 강조하지 않아도 그가 신인임은 물론 영성의 대가란 말을 들을 만도 하지 않은가. 

 

지금으로부터 5년 전의 일로 기억이 된다. 내가 첨 그의 유튜브를 접했을 때다. 당시만 해도 난 신인이란 확신을 갖지 못했고 단지 초능력자 내진 초인으로만 여기고 있었다. 그러다가 그가 대천사를 인간에게 주고부터 그에 대한 인식이 달라졌고 축복과 광체 등의 신비함이 더해짐에 따라 신인의 능력인 영성이 있다고 단정하기에 이르렀다. 즉 그가 신인으로서의 확신이 서게 됐다는 것이다. 

 

영성은 종교에서 많이 쓰고 있는 말로 알려져 있다. 그렇다면 신인이 말하는 영성은 뭣이며 어떤 것이 포함되는가. 영성은 육적이고 세속적이 아닌 영적인 성질로서 지금 신인이 인간에게 주고 있는 축복과 광체, 대천사와 백궁명패 그리고 맨 나중에 보여준 기적의 식품인 불로유가 이에 해당된다고 하겠다. 

 

난 신인이 보여주는 영성의 세계에 눈을 뜨기 시작하면서부터 그를 지지하게 됐고 그래서 난 영성과 신인을 모르는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어 부족한 점은 많지만 신인에 관한 책을 내게 됐다. 그리고 지금은 언론인으로서 신인에 관련된 영성에 대해 글을 써서 기사화하는데 열정을 쏟고 있다. 그동안 게재한 글로는 불로유가 주종을 이루고 있고 부수적으로 신인이 몸소 실천하고 있는 무료급식에 관한 것 등이다. 

 

그래서 그런지 얼마 전, 어떤 사람이 나의 면전에다 대놓고 몰아붙이듯 나를 신비주의자라고 하지 않은가. 솔직히 말하지만 그가 나를 어떻게 생각하든 난 신비주의자가 맞다. 왜냐하면 내가 절대자나 신 등의 초월적 존재를 신인이라 믿고 있는데다 불로유와 같은 영적 체험을 몸소 경험하면서 신인을 적극적으로 따르게 됐기 때문이다. 내가 신인에게 다가가고 신비주의자가 된 것은 우연이 아니다. 이는 신인이 뭇사람에게 준 대천사의 영향도 있지만 결정적인 것은 불로유에 대한 경험이 크게 작용했다고 할 수 있다. 

 

최근의 일이다. 내가 신인에 대한 글을 많이 다루게 되자 이를 시기라도 하듯 나를 못마땅하게 여기는 사람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들이 그렇게 하는 이유는 뭘까. 추정컨대 왜 신인 허경영을 신인이라 하고 왜 그를 지지하며 왜 불로유를 예찬하느냐에 있었을 것이라 봐진다. 이게 아니면 그렇게 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묻는다. 영성을 말하는 게 잘못인가. 

 

내가 신인을 지지하고 불로유를 예찬하는 등 영성을 말한다하여 몰아세우다니 한마디로 어이가 없다. 그들이 그렇게 한다하여 내가 위축된다고 보는가. 내가 신인이 만든 초종교를 믿는 것은 국민의 기본법에 종교의 자유가 보장돼있기 때문이고 법에 명시된 것처럼 초종교를 신봉하는 것은 나의 자유에 속한다. 누구도 이를 막을 수가 없다. 내가 뭣을 믿던 그것은 자유이다. 신앙의 자유는 믿는 것만 해당되는 게 아니다. 믿지 않는 것도 포함한다. 믿기 싫으면 믿지 않는 것도 신앙의 자유에 속한다. 

 

신인과 초종교를 생각해본다. 그가 신인이기 때문에 초종교가 아닌가. 초종교는 인간이 만든 종교와 다르다. 신인이란 주체가 없으면 초종교가 있을 수 없다. 난 초종교를 신앙의 대상으로 삼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인과 초종교를 믿지 말라는 것은 위헌적인 소치로서 어불성설이 아닐 수 없다. 그리고 내가 신인 허경영을 신인이라 한다하여 제동을 거는 것은 상식 밖의 일로서 이는 판단의 문제가 아니겠는가. 

 

우리의 헌법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군데군데 표현의 자유가 보장돼있음을 알 수가 있다. 신인 허경영이 인류를 위해 내놓은 불로유는 영적인 요소가 많다. 영성의 대표적인 산물인 불로유. 신인이 말하는 방식대로 하면 우유는 절대 썩는 일이 없다. 그렇기 때문에 불로유가 썩지 않는다고 표현하고 이에 대한 글을 쓰는데 뭣이 잘못인가. 

 

우리가 알아야할 것이 있다. 모든 사람은 표현의 자유에 대한 권리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자유는 인류의 보편적 가치가 아닌가. 그가 초종교를 가진 신인이기에 지지하고 불로유가 인류에게 유익하기 때문에 이를 예찬한다. 영성이 사실과 다르면 내가 왜 그렇게 하겠는가. 표현의 자유는 제약을 받을 수가 없다. 따라서 잘못 생각하고 있는 사람에게 말한다. 이 기회에 생각을 바꿔야하지 않겠는가라고. 신인이 보여준 영성 등에 대한 전말을 안다면 글 쓰는 사람을 못마땅하게 여길 하등의 이유가 없다.

 

* 김차웅 : 검경합동신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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