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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연휴, 홍범도장군 등 독립유공자 참배행렬 이어져 “국군뿌리는 독립군과 광복군, 군인본분과 핵심가치는 자주독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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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뉴스

[기타] 추석연휴, 홍범도장군 등 독립유공자 참배행렬 이어져 “국군뿌리는 독립군과 광복군, 군인본분과 핵심가치는 자주독립"

추석연휴, 홍범도장군 등 독립유공자 참배행렬 이어져
“국군뿌리는 독립군과 광복군, 군인본분과 핵심가치는 자주독립"
                
                
 올해 유난히도 길게 이어진 추석연휴 등을 이용하여 홍범도장군 등 ‘국립대전현충원’에 모셔진 독립유공자를 찾는 발걸음이 끊어지지 않고 있다. 개인자격으로 ‘나 홀로’인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 가족단위 또는 친지단위로 삼삼오오 짝을 이루어 묘지를 찾아 참배하면서 군인본분과 핵심가치 등을 되새겼다.  
                
 이들 행렬 가운데 지난 일요일(10.1.) 오전 11시부터 낮 1시까지 ‘국민제안경연잔치 공동개최추진회의’와 ‘행·의정감시네트워크 중앙회’ 등 약 15개 시민단체 회원 등 약 20여명이(별지1 참조) 참석한 ‘2023 추석기념, 홍범도장군과 후손 없는 광복군(이하 무후(無後)광복군) 17위 참배’ 행사가 눈길을 끌었다. 추석연휴 한허리를 베어내는 어려운 일이었지만, 이 행사에 큰 가치와 의미를 부여했던 이들은 오전 11시부터 정오까지 ‘국립대전현충원’ 제3묘역에 모셔진 홍범도장군 참배와 추석차례를 마치고, 제7묘역으로 이동해 정오부터 1시까지 진행된 무후(無後)광복군 17위 추모제와 추석합동차례에 동참했다.
                     
 참석자들은 30여명이 넘었고, 송운학 ‘공익감시 민권회의’ 대표는 ‘추모사’에서 “국군의 뿌리는 독립군과 광복군이며, 군인본분과 핵심가치는 자주독립”이라고 역설했다. 주최단체 중 하나인 ‘글로벌 에코넷’ 김선홍 상임회장은 “연 2회 개최원칙 등 이번 행사로 어느덧 28회째가 되었다”고 설명했다. 
                       
 한편, 이들은 ‘홍범도장군 약력 및 참배행사 경과보고’(별지2 참조)에서 지난 8월 25일 육군사관학교가 “2018년 생도학습건물(충무관) 중앙현관 앞에 설치된 홍범도·지청천·이회영·이범석·김좌진 등 독립운동가 5인의 흉상을 교내 다른 장소나 교외로 이전하는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고 밝혀 시작된 논란에 대해서도 분명한 입장을 발표했다. 
                 
 위 보고에 따르면, 홍범도장군은 “일제강점기 항일무장투쟁군인으로서 경술국치(1910년) 후 만주에서 독립군을 이끌며 봉오동 전투와 청산리 전투 등에서 대승을 일궈낸 독립영웅”이다. 
                                       
 다만, 위 보고는 일제가 이들 전투에 대한 보복으로 저지른 잔인한 간도참변(間島慘變) 및 그 뒤 소련에서 벌어진 자유시 참변 등 시대적 배경을 간단하게 요약하여 압축적으로 설명한 뒤 “당시 홍범도장군은 소련(적군)과의 협조에 찬성했고 조건부로 무장해제도 찬성했다. 자유시 참변 이후 포로로 잡힌 대한의용군 독립군에 대한 군사재판에서 고려혁명 군사법원 재판관을 지내기도 했다”고 인정했다. 심지어는 “러시아에 남아 소련 시민으로서 삶을 시작했고 1927년 소련 공산당에 입당했다”는 사실도 인정했다.  
                      
 특히, 위 보고는 “반공을 국시로 내세우고 쿠데타를 감행한 박정희도 이러한 사실들을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정희는 대한민국 대통령권한대행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 육군대장 자격으로 1962년 10월 25일 홍범도장군에게 '대한민국 건국공로훈장 복장'을 추서했다”면서 그 이유 등을 “깊게 성찰하고자 홍범도장군과 후손 없는 광복군, 즉 무후(無後) 광복군 17위를 참배하게 되었다.”고 강조하고 있다.  

홍범도(洪範圖)장군 약력 및 경과보고
꽃이 되어 이 땅을 지키고, 바람이 되어 새 날을 열다.
      2023.10.1.
공익감시 민권회의 및 국민제안 경연잔치 공동개최 추진회의 공동제공
                            
조선 말기 의병장이며, 일제강점기 항일무장투쟁군인이었던 홍범도장군은 1868년 음력 8월 27일 태어나 1943년 10월 25일 별세했다. 고향은 평남 평양부 보통문(서문) 안에 있던 무열사 앞마을이며. 헌법상 평안남도 평양시 장별리(행정동  수옥동)라 부른다. 출생지가 현재 기준 평안남도 양덕군, 자강도 자성군 출신이라는 설도 있다.
               
빈농으로 양반집 머슴이 된 홍윤식(洪允植)이 아버지며, 어머니는 출산 후유증으로 일주일 만에 사망했다. 그가 9살이 되던 해, 아버지마저 세상을 떠났다. 증조부 홍이팔(洪二八)은 홍경래(洪景來)의 가까운 친척으로 홍경래의 난에 가담해서 처형되었고 친인척 역시 멸족되다시피 큰 화를 당했다. 그 당시 할아버지 홍동철이 얼마 남지 않은 식솔을 이끌고 평양에 은신해 살았다.
                
홍범도장군은 사격술에 능했으며, 스스로 의병이 되고 의병을 모집하여 의병장으로 추대되었다. 경술국치(1910년) 이후 만주에서 독립군을 이끌며 봉오동 전투와 청산리전투 등에서 대승(대첩)을 일궈낸 주인공이자 독립영웅이다.
             
일제가 이에 대한 보복으로 1920년 10월~21년 4월까지 간도참변(間島慘變) 또는 경신참변(庚申慘變)을 일으키자 독립군은 소련 자유시(自由市)를 새로운 근거지로 삼아 당시 내전 중이었던 소련군(적군)과 교섭하여 협조를 얻자는 입장과 이에 반대하는 입장 등으로 분열되었다. 협조를 얻자는 입장 내부에서도 어느 집단이(누가) 군통수권을 행사할 것인가를 둘러싼 갈등이 발생했다. 게다가 소련공산당의 내부 대립 및 소련중앙정부와 자치주 사이의 입장차 등이 복잡하게 얽히고설켜 독립군이 (강제로) 무장해제를 당했다. 이 과정에서 이른바 자유시 참변 또는 흑하(黑河) 사변(事變)을 겪게 된다.
        
당시 홍범도장군은 소련과의 협조에 찬성했고, 조건부로 무장해제도 찬성했다. 특히, 자유시 참변 이후 포로로 잡힌 대한의용군 독립군에 대한 군사재판에서 홍범도 장군은 고려혁명 군사법원 재판관으로 활동했다.
             
극우 일각과 뉴 라이트 계열에서 홍범도장군이 자유시 참변에 책임이 있다고 주장하는 이유 가운데 하나가 바로 이것이다. 하지만, 홍법도장군은 참변이 일어난 장소에 없었다. 고려혁명군은 항일의병장으로서 명성이 높은 홍범도장군을 재판위원으로 선임해 재판이 정당하다는 것을 보여주려고 했지만, 재판 자체가 흐지부지되었고, 실형이 선고된 사람도 손에 꼽혔다. 
         
자유시 참변 이후 독립군들은 상하이 대한민국 임시정부로 가거나 다른 지방으로 흩어졌다. 홍범도장군은 소련 입국신고서 '직업' 항목에 <의병>, '목적과 희망' 항목에 <고려독립>이라고 떳떳하게 자신을 밝혔으나, 돌아갈 곳도 가족도 없었다. 장군은 결국 러시아에 남아 소련 시민으로서의 삶을 시작했고, 1927년 소련 공산당에 입당했다.
               
1937년 스탈린은 일본인과 닮은 고려인이 극동아시아 지역에서 일제와 일제군 간첩으로 활동할 우려가 있다면서 그러한 가능성을 차단해야만 한다는 이유로 많은 고려인들을 황량한 중앙아시아로 강제로 이주시켰다. 홍범도장군 역시 카자흐스탄에 강제 이주되었고, 그곳에서 (광복을 보지 못한 채) 생을 마감했다. 
           
반공을 국시로 내세우고 쿠데타를 감행한 박정희도 이러한 사실들을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정희는 대한민국 대통령권한대행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 육군대장 자격으로 1962년 10월 25일 홍범도장군에게 '대한민국 건국공로훈장 복장'을 추서했다. 현재의 건국훈장 대통령장이다.
             
1991년 카자흐스탄이 소련에서 독립한 후 김영삼 대통령이 1995년 유해송환을 추진함으로서 남북한 사이에 치열한 외교전이 일어났다. 하지만, 카자흐스탄 고려인 사회가 북한으로의 유해 송환을 거부하는 등 남북 모두 뜻을 이루지 못했다.
             
2021년 8월 15일 대한민국정부는 극진한 예우를 갖춰 홍범도장군 유해를 카자흐스탄에서 모셔왔다. 봉환 후 국립대전현충원 현충관에 유해를 임시 안치했다. 홍범도장군의 현충원 안장은 대한민국의 흙과 카자흐스탄에서 홍범도장군 묘역에 있던 카자흐스탄의 흙과 함께 허토됐다. 또, 16일과 17일 양일간 국민 분향소를 열어 국민추모기간을 보냈다.
          
같은 달 17일 대한민국 대통령 문재인은 홍범도장군에게 건국훈장 최고등급인 대한민국장을 추서했다. 여운형선생에 이어 2번째로 대한민국장을 받은 것이자 대통령장 중복 수훈자가 된 것이다. 다음날(2021년 8월 18일)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3묘역에 안장되었다.
           
결론적으로 홍범도장군 등 독립영웅과 독립군이 일구어 낸 봉오동 대첩과 청산리 대첩 등이 없었다면, 우리 겨레가 펼친 항일무장투쟁 등 독립운동은 내세울 것이 없는, 아주 초라하고 보잘 것 없는 것이 되고 말 것이다. 불법쿠데타로 국가권력을 탈취한 뒤 국민을 탄압하고 인권을 유린했던 독재자 박정희가 앞장서서 홍범도장군에게 '대한민국 건국공로훈장 복장'을 추서한 이유가 바로 이것이었을 것이다. “호랑이 잡으러 호랑이 굴에 들어간다.”던 민주진영 배신자 김영삼이 홍범도장군 유해를 봉환하라고 시도한 이유 역시 바로 이것이었을 것이다.
             
오늘 우리는 바로 이러한 이유 등을 깊게 성찰하고자 홍범도장군과 후손 없는 광복군, 즉 무후(無後) 광복군 17위 참배행사를 열게 되었다. 그것은 독립군과 광복군이 국군뿌리고, 자주독립이 군인본분과 핵심가치라는 사실이다. 그것이 만고불변의 진리다.
              
홍범도장군 등 독립영웅 5인의 흉상을 이전하는 문제로 더 이상 국민을 분열시켜서는 곤란하다. 영원한 적국도, 영원한 우방도 없는 냉혹한 국제관계에서 홍범도장군 등 독립군과 광복군은 이미 우리 국민 가슴 속에 독립영웅으로 영원히 기억될 것이다. 이를 부정하려는 시도는 끝내 실패하게 될 것이고, 그 직위와 의도 등과 무관하게 국민배반, 국익훼손, 민족반역 등으로 영원히 낙인찍히는 등 엄중한 심판을 받게 될 것이다. 
                                      

              
             

[기타] 추석연휴, 홍범도장군 등 독립유공자 참배행렬 이어져 “국군뿌리는 독립군과 광복군, 군인본분과 핵심가치는 자주독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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