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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택시, 안재홍 기념관 건립 본격 착수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독립운동가 민세 안재홍(1891~1965)을 기리고, 그의 정신을 기억하기 위한 ‘민세 안재홍 기념관’ 건립이 본격적으로 추진됐다. 평택시는 민세 안재홍 기념관 건립을 위한 연구용역 착수보고회를 24일 개최했다. 보고회에는 안재홍기념사업회와 시 관계자 등이 참석해 기념관의 방향성에 대해 논의하고, 향후 행정 절차 등을 공유했다. 안재홍 기념관은 고덕국제신도시에 조성될 ‘안재홍 역사공원’에 자리할 예정이다. 평택시는 안재홍 선양 사업의 일환으로 인물 공원으로는 전국 최대 규모로 안재홍 역사공원을 지정한 바 있다. 이번 연구용역은 안재홍 기념관의 기본방향을 설정하기 위해 추진되는 것으로, 안재홍 생가 등 민세와 관련한 시설 현황을 조사하고, 기념관의 법적 가능 규모 등을 검토한다. 또한 안재홍 역사공원의 기본방향까지 제시할 계획이다. 이날 강지원 안재홍기념사업회 회장은 "민세 선생이 강조한 사회통합과 열린 민족주의는 오늘날 한국사회에서도 여전히 필요한 가치”라며 "심도 있는 연구와 토론을 통해 안재홍 선생의 뜻과 발자취가 한 곳에 모일 수 있는 훌륭한 공간이 탄생하길 기대한다”고 전했다. 최원용 평택시 부시장은 "안재홍 선생은 평택은 물론, 대한민국이 기억해야 할 역사적 인물”이라며 "민세의 정신과 생각이 현대인들에게 고스란히 전해질 수 있는 기념관 건립을 위해 평택시는 노력하겠다”고 했다. 한편, 민세 안재홍은 평택시 고덕면 출신으로, 일제강점기 청년외교단 사건, 언론 필화, 신간회 운동, 조선어학회 사건 등으로 9차례에 걸쳐 총 7년 3개월 투옥됐던 독립운동가다. 해방 이후에는 건국준비위원회 부위원장, 좌우합작의 우측 대표, 미군정청 민정장관, 2대 국회의원 등으로 활동하며 민족의 통합을 위해 힘썼다. 이에 대한민국 정부는 1989년 3월 1일, 민세를 건국훈장 대통령장에 추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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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양교육지원청, 우리고장 기억해야 할 독립운동 이야기경상북도영양교육지원청은 2022년 5월 20일 오후 3시 3층 대회의실에서 '2022년 영양독립운동 지역화 교재 발간 협의회'를 실시하였다. 목적은 초등 사회과 역사교육 관련 교육용 워크북으로 교육과정 운영을 지원하고 영양의 독립운동 정신을 계승한 교육자료를 개발하고자 함이다. 우리 고장은 구한말 김도현, 조승기, 김성운, 조병희 등 의병항쟁과 애국계몽운동의 많은 애국지사를 배출한 곳으로 독립유공자가 63명, 독립운동 사적지가 12곳, 독립운동 현충시설 9곳이 있는 유서 깊은 곳이다. 특히, 올해는 한국광복군에 참여하여 ‘독립군의 어머니’라 불리는 남자현(1872~1933) 지사 탄생 100주년을 맞이하는 해이기도 하여 더욱 그 의미가 깊다. 남자현 지사는 영화 “암살(감독 최동훈, 2015)”의 안옥윤역의 모티브가 되었던 독립운동가로 영양군 석보면 지경리가 고향이다. 이경 교육장은 “경상북도교육청 특색사업인 독립 운동사를 교재화함으로써 영양 독립 운동 역사를 재조명하고 학생들에게 새로운 나라 사랑의 길을 가르치고 지역의 자긍심을 고취하는 자료로 활용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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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보훈처, 하와이 활동 독립유공자 6명의 직계 후손 확인하와이 이민 120주년을 맞아 하와이에서 활동한 국내·외 독립유공자 6명의 직계 후손이 확인됐다. 국가보훈처는 2일"지난해 12월 국외 독립운동 사료수집과 후손 찾기 일환으로 하와이 거주 후손과 현지 관계자들을 면담하고 각종 증명서와 사진, 신문기사 등 다양한 자료를 입수하는 등의 노력을 펼친 결과, 하와이에서 활동한 국내 독립유공자 5명과 외국인 독립유공자 1명의 후손 4명을 확인했다”라고 밝혔다. 국가보훈처는 이 같은 내용을 지난달 28일 열린 후손확인위원회를 통해 최종심의·의결했다. 먼저, 보훈처 후손확인위원회는 가족 독립유공자인 문또라(’19, 건국포장), 정월라(’18, 대통령표창), 정원명(’14, 애국장)의 후손으로, 문또라 지사의 외증손 엘사 칼(Elsa Carl)을 후손으로 심의·의결했다. 하와이 이민 1세대인 문또라 지사는 1913년 하와이 최초의 여성단체인 대한인부인회를 시작으로 하와이 한인협회, 조선민족혁명단 등에서 여성 간부로 활동하며 독립운동 자금을 지원했다. 문또라 지사의 딸 정월라 지사 역시 하와이 한인 여성들과‘독립금 예약 수봉위원회’를 조직하는 등 여러 차례 독립운동 자금을 지원했다. 정월라 지사의 남편 정원명 지사는 1909년, 대한인국민회 하와이지방총회 총회장에 이어, 1925년 임시정부후원회장을 역임하며 기관지‘단산시보’를 발행하는 등 광복 이전까지 다양한 독립운동을 전개했다. 국가보훈처는 지난해 11월 현지 사료수집위원에게 제보 받은 정월라 지사의 사망사건 기사(Honolulu Star-Bulletin, 1959.1.2. 보도)를 통해 직계존비속 이름, 사망일자 등 중요 정보를 확인했다. 이후 미국 국가공문서 보관소인‘내셔널 아카이브’에 보관된 정원명 지사의 제1차 세계대전 징집등록카드를 입수, 추가 정보를 확인했다. 또한, 후손확인위원회는 독립유공자 천진화(’16, 대통령표창)의 외손녀 파멜라 순이 유(Pamela Sonnie You)와 독립유공자 김예준(’22, 건국포장)의 자녀(김영호)를 후손으로 심의·의결했다. 천진화 지사는 1914년 대한인국민회 하와이지방회, 1944년 조선민족혁명당 하와이 총지부 등에서 함께 활동하며 독립운동 자금을 지원했고, 김예준 지사는 1931년 4월, 김구의 특무공작에 찬성하여 하와이 한인들과 함께 독립의연금 1천 달러를 모금, 윤봉길, 이봉창 의사의 의거 자금을 지원했다. 국가보훈처는 하와이 방문 당시, 천진화 지사의 외손녀를 직접 만나 후손입증 자료, 미공개 사진 등을 확보하고 현지 한인교회 관계자를 통해 김예준 지사의 공적과 후손정보를 확인했으며, 이를 기초로 올해 3.1절 김예준 지사에게 포상을 추서했다. 마지막으로, 외국인으로서 1963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 받은 조지 새넌 맥큔(George S. McCune, 한국명 윤산온)의 하와이 거주 손자조지 블레어 맥큔(George Blair McCune)를 후손으로 심의·의결했다. 조지 새넌 맥큔 지사는 1905년 선교사로 한국에 입국, 1919년 3·1운동 때 학생들의 독립운동을 후원하고, 당시 상황을 기록하여 시카고 잡지사로 보내는 등 독립운동을 전개했다. 특히, 1920년 미국의원단에‘독립승인청원서’를 전달하다가 일제에 의해 미국으로 추방당한 뒤 다시 복귀했지만, 1936년‘신사참배 반대’를 이유로 숭실학교 교장직에서 파면되는 등 한국의 독립을 위해 헌신한 대표적 외국인 독립유공자이다. 국가보훈처는 조지 새넌 맥큔 지사를‘2020년 2월, 이달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하며 후손 찾기에 착수, 지사가 교장으로 있었던 숭실대학교 소장 자료 조사과정에서 후손 정보를 확인하고 후손과의 지속적인 연락을 통해 입증서류를 확보했다. 국가보훈처는 후손으로 확인된 분들에게 올해 광복절을 계기로 하와이 현지에서 훈장을 전수하고, 독립유공자 유족등록 절차를 거쳐 보상금 등 보훈수혜를 제공할 계획이다. 이번 후손 확인에 결정적 기여를 한 한인이민연구소 이덕희 소장(보훈처 미주 사료수집위원)은 "하와이와 미주 본토에 거주하고 있는 후손들은 이미 3~4세대로 고령화되었기 때문에 더 늦기 전에 적극적으로 후손 찾기 사업이 추진되어야 할 것”이라며 미주 후손 찾기 사업의 확대를 요청했다. 남궁선 국가보훈처 보훈예우국장은"이번 후손 확인은 한국인의 하와이 이주 120년을 맞아 조국독립과 임시정부 활동에 자금을 지원했던 하와이 독립유공자를 재조명한다는 차원에서도 의미가 크다”면서"앞으로도 현지 관계자들과의 긴밀한 협조를 통해 입증자료를 수집하는 등 국외 거주 독립유공자 후손 찾기에 더욱 박차를 가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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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도,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기념식전라남도는 11일 무안 초당대학교 국제회의장에서 ‘찬란히 돌아오시다’라는 주제로 제103주년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기념식을 열어 선열의 숭고한 자주독립 정신을 계승 발전시킬 것을 다짐했다. 광복회 전남도지부 주관으로 열린 이날 기념식에는 기관단체장, 광복회원과 보훈단체장, 학생 등 200여 명이 참석했다. 기념식은 국민의례, 임시헌장 선포문 낭독, 약사보고, 기념사, 만세삼창 순으로 진행됐다. 김영록 전남도지사는 기념사에서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3․1운동의 숭고한 정신을 계승하고 발전시키기 위한 최초의 민주공화제 정부였다”며 “전남은 임시정부의 자주 독립정신을 계승하고 발전시켜 환태평양 시대를 선도하는 신해양․친환경 수도로 만들겠다”고 말했다. 이어 “국가를 위해 헌신한 보훈 가족을 예우하고, 근거자료가 충분하지 않아 서훈을 받지 못했던 독립운동가를 찾아 명예를 회복하도록 돕겠다”고 강조했다. 정부는 임시정부 수립을 선포한 1919년 4월 11일을 기념해 임시정부의 법통을 이어받아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굳건히 하고 민족 자존의식을 확립하기 위해 기념일을 제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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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남대 ‘대한민국 임시정부 기념관’ 개관역대 대통령들을 넘어 대한민국 임시정부 행정수반들의 혼과 얼을 되새긴 역사교육 문화의 공간이 옛 대통령별장 청남대에서 문을 열었다. 충북도 청남대관리사업소는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3주년을 맞이한 11일 청남대 임시정부 광장(구 골프장)에서 ‘대한민국 임시정부 기념관’ 개관식을 가졌다. 이날 대한민국 임시정부 기념관 개관식에는 이시종 충북도지사를 비롯해 박문희 충북도의회 의장, 김병우 충북도교육감, 한범덕 청주시장, 최충진 청주시의회 의장 등이 참석해 개관을 축하했다. 또한 정용근 충북경찰청장과 광복회, 보훈지청 관계자들과 더불어 이날 개관식의 주인공인 행정수반 후손 등 80여 명이 참석해 의미를 더했다. 개관식은 이시종 충북지사의 기념사를 시작으로 주요내빈의 축사가 진행됐다. 이어 기념식수와 현판 제막식을 가진 후 기념관을 관람하는 순서로 이어졌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기념관’은 청남대 대한민국 임시정부 광장(구 골프장) 한편에 연면적 2,393㎡ 규모 지하 1층, 지상 2층으로 조성됐으며, 임시정부의 수립과 활동에 관련된 각종 기록물 및 유물 전시와 함께 임시정부 청사 포토존, 인터렉티브 체험시설 등이 마련됐다. 기념관을 들어서면 가장 먼저 마주하는 기념관 1층에는 2개의 전시실과 세미나실이 자리한다. 먼저 제1전시실은 현재의 대통령에 해당하는 임시정부의 지도자로서 대통령 이승만·박은식, 국무령 이상룡·홍진, 주석 이동녕·송병조·양기탁·김구 등 행정수반 8인의 활동과 생애 등을 함축해 정교하게 그려 넣은 임시정부 역사기록화가 전시돼 이곳 기념관을 찾는 관람객을 맞이한다. 제2전시실에는 상하이부터 충칭까지 장장 4,000km에 이르는 임시정부의 험난했던 이동 경로를 비롯해 대한민국임시헌장과 같은 임시정부 활동 자료와 한국광복군 서명문 태극기 등 독립운동 관련 기록들이 전시됐다. 세미나실은 60명의 인원이 수용 가능하며 기관 및 단체의 각종 회의 및 교육 등 다양한 목적의 공간 활용이 가능하며 시선을 올려 2층으로 이동하면 기획전시실과 북카페가 자리하고 있다. 기획전시실에는 ‘충북인,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주도하다’라는 주제로 신채호, 신규식 등 임시정부에서 활동했던 17명의 충북 출신 요인들의 활동 자료와 사진이 전시되어 있다. 또한 관람객들의 편의를 위한 휴게시설로 북카페도 마련돼 임시정부 광장과 함께 대청호와 어우러진 청남대의 경치를 감상하며 휴식과 함께 독립운동 관련 서적들도 자유롭게 열람할 수 있다. 북카페에서 한숨 돌리고 지하로 발길을 돌리면 다채로운 체험시설과 영상실이 관람객들을 맞이한다. 특히 충칭 임시정부 청사를 일부 재현해 놓은 디오라마 포토존은 관람객들의 기념사진 명소로 인기를 끌 것으로 예상된다. 체험전시실에는 공을 던져 물방울 속에 갇힌 독립운동가들을 구해주는 ‘독립운동가 구하기’를 비롯해 관람객이 직접 종이 위에 색칠한 캐릭터들을 스캔하면 대형 화면에 그대로 소환돼 화면 속을 돌아다니는 ‘디지털 스케치팝’, 행정수반의 어록들을 익히고 체험할 수 있는 ‘키워드 터치월’ 등이 관람객들과 상호작용 하며 재미까지 선사할 예정이다. 마지막으로 초대형 화면이 자리한 영상실에는 각 행정수반의 업적을 주제로 한 ‘대한민국 임시정부 행정수반 그 불굴의 혼을 만나다’ 영상이 상영되며, 영상을 통해 행정수반의 발자취와 업적을 한눈에 이해할 수 있다. 기념관을 나오면 펼쳐지는 광대한 대한민국 임시정부 광장에는 임시정부 초대 대통령 우남 이승만부터 주석 백범 김구까지 임시정부 행정수반 8인의 동상이 세워져 있어 드넓은 잔디 광장을 거닐며 각 행정수반과 함께 사진 촬영이 가능하다. 이시종 지사는 “임시정부 기념관은 대한민국의 역사를 볼 수 있는 의미 있는 공간”이라며 “독립운동 지도자들의 숭고한 희생정신을 느끼며 즐길 수 있는 역사교육의 장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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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제103회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기념식 개최충남도 후원, 광복회 충남지부는 11일 충남보훈관 기획전시설에서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3주년을 맞아 기념식을 개최했다. 이날 기념식에는 양승조 지사와 김명선 도의회 의장, 김지철 도교육감, 홍경화 충남서부보훈지청장 등 기관·단체장을 비롯해 독립운동가 후손 100여 명이 참석했다. 행사는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약사보고와 헌시낭독에 이어 독립운동가 복지증진에 힘쓴 유공자에게 도지사 표창장을 수여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기념일은 1919년 4월 11일 국호가 제정되고, 임시헌장 반포와 국무원 선임이 이뤄짐에 따라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하는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공고히 하고자 제정해 기념하고 있다. 이 자리에서 양 지사는 “제103주년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을 기념하는 오늘 순국선열들의 삶을 기리고, 숭고한 가치와 희망을 철저히 계승하겠다”며 “나라의 독립과 번영을 위해 투쟁한 자랑스러운 대한민국과 충남 103년의 역사를 되새기고, 새로운 미래 100년 이정표를 세워 ‘더 행복한 충남, 대한민국의 중심’을 함께 만들어 가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어 “220만 도민 모두가 위대했던 애국선열들의 정신을 이어 더욱 새롭게 승화시키길 바라고, 그러한 정신을 바탕으로 당면한 코로나19 위기를 넘어 수많은 시대적 과제를 지혜롭게 헤쳐 가길 기원한다”고 덧붙였다. 한편, 도는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행사 참석 인원을 최소화했으며, 행사장 내 간격 유지와 마스크를 착용하고 행사를 진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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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광역시교육청동아시아국제교육원,2022 청소년 동아시아 역사기행단 발대식인천광역시교육청동아시아국제교육원은 청소년의 실천적 역사・평화 의식 함양을 위한 2022 청소년 동아시아 역사기행단 제2기 발대식을 개최했다고 11일 밝혔다. 이날 발대식은 관내 9개 고등학교(가림고, 광성고, 옥련여고, 인천산곡고, 인천아라고, 인천여고, 인천초은고, 인천하늘고, 인화여고) 학생들 간의 교류 활성화를 위해 학교별 팀 소개, 선서식, 고고 역사기행단 활동 및 친교활동 등의 순서로 진행됐다. 제2기 '2022 고고 역사기행단'으로 선발된 36명은 역사기행 추진단 및 지도교사(11명)와 함께 활동한다. 이들은 9월까지 독립운동가 안중근과 관련된 주제에 따라 팀별 답사기행을 기획・ 탐구하고 영상물을 제작·공유한다. 코로나19 상황에 따라 중국 하얼빈과 뤼순 지역을 중심으로 안중근 의사의 발자취를 따라가며 한반도의 통일, 동양평화를 바탕으로 세계평화를 염원했던 그의 용기와 사상을 되짚어 볼 계획이다. 동아시아국제교육원 관계자는 “아직 활동에 제약이 따르지만 상황에 맞게 창의적인 방법으로 역사기행을 기획·활동하길 기대한다”며 “활동을 통해 독립운동가들과 기억해야 할 우리 역사를 배우고 역사의 흐름 속에서 각자의 삶과 동아시아 미래를 바라보는 안목이 성장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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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평군 양동면, 양동 기미 4·7 만세운동 103주년 기념행사 개최양평군 양동면에서는 지난 7일 양동 기미 4·7 만세운동 103주년 기념행사가 양동을미의병 묘역에서 선열의 애국애족 정신과 을미의병의 넋을 기리며 양동면민의 자긍심 고취와 화합을 위해 개최됐다. 이날 기념식에는 이계환 양평부군수, 전진선 양평군의장, 이종인•전승희 경기도의회 의원 및 독립유공자 후손 등이 참석해 방역수칙을 준수하며 진행됐다. 국민의례를 시작으로 양평을미의병정신 현창회 이복재 회장의 기념사와 이계환 양평부군수의 추념사가 이어진 후 헌화·분향, 만세삼창 순으로 진행됐다. 양동은 ‘을미의병’의 발상지로 호국의 정신, 독립의 정신이 서린 의향의 고장이다. 또한, 1919년 전국적으로 불같이 일어난 3․1만세 운동은 양평에서도 일어났는데 그 전개 과정은 시위 규모나 양상에서 다른 지역과는 달리 방대하고 치열했다. 3월 10일 서종면 문호리에서 수백 명의 군중들이 참여한 가운데 시작돼 4월 7일에는 양동면에서 3천여 명이 참여해 만세운동을 일어났으며, 일본 헌병의 발포로 다수 희생자가 발생했다. 이복재 회장은 “을미의병 127주년 및 4.7 만세운동 103주년을 맞아 을미의병 발상지인 이곳 양동에서 그간 밝혀진 의병 및 독립운동가들과 유·무명 영령들의 숭고한 넋을 추모한다”며, “오늘의 행사가 임들의 창의 호국정신을 후세까지 영원히 기리고 위대한 선조들이 만들어낸 자긍심 넘치는 역사를 가슴에 품고 대한민국의 평화와 번영을 위해 면민 모두가 하나가 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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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평군 양동면, 양동 기미 4·7 만세운동 103주년 기념행사 개최양평군 양동면에서는 지난 7일 양동 기미 4·7 만세운동 103주년 기념행사가 양동을미의병 묘역에서 선열의 애국애족 정신과 을미의병의 넋을 기리며 양동면민의 자긍심 고취와 화합을 위해 개최됐다. 이날 기념식에는 이계환 양평부군수, 전진선 양평군의장, 이종인•전승희 경기도의회 의원 및 독립유공자 후손 등이 참석해 방역수칙을 준수하며 진행됐다. 국민의례를 시작으로 양평을미의병정신 현창회 이복재 회장의 기념사와 이계환 양평부군수의 추념사가 이어진 후 헌화·분향, 만세삼창 순으로 진행됐다. 양동은 ‘을미의병’의 발상지로 호국의 정신, 독립의 정신이 서린 의향의 고장이다. 또한, 1919년 전국적으로 불같이 일어난 3․1만세 운동은 양평에서도 일어났는데 그 전개 과정은 시위 규모나 양상에서 다른 지역과는 달리 방대하고 치열했다. 3월 10일 서종면 문호리에서 수백 명의 군중들이 참여한 가운데 시작돼 4월 7일에는 양동면에서 3천여 명이 참여해 만세운동을 일어났으며, 일본 헌병의 발포로 다수 희생자가 발생했다. 이복재 회장은 “을미의병 127주년 및 4.7 만세운동 103주년을 맞아 을미의병 발상지인 이곳 양동에서 그간 밝혀진 의병 및 독립운동가들과 유·무명 영령들의 숭고한 넋을 추모한다”며, “오늘의 행사가 임들의 창의 호국정신을 후세까지 영원히 기리고 위대한 선조들이 만들어낸 자긍심 넘치는 역사를 가슴에 품고 대한민국의 평화와 번영을 위해 면민 모두가 하나가 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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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민회 주역인 안태국 선생을 ‘2022년 4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국가보훈처는 광복회, 독립기념관과 공동으로 안태국 선생(1877∼1920)을‘2022년 4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하였다. 안태국 선생은 신민회 활동으로 옥고를 치르고 만주(북간도 혼춘)에서 독립만세운동을 주도하였으며, 3ㆍ1만세운동 이후 상하이로 와서 임시정부에 참여하였으나, 1920년 4월 고문 후유증 등으로 병사하였다. 1877년 평안남도 중화(현재 평양 부근)에서 태어난 선생은 1907년 안창호, 양기탁, 노백린, 신채호 등과 함께 애국계몽운동 단체인 신민회를 조직하고, 최고위 간부인 평안남도 총감에 임명되어 1911년 해체 시까지 4년여간 국권 회복에 힘썼다. 당시 신민회 기관지 역할을 한 '대한매일신보'평양지사장을 겸임하던 선생은 1909년 애국계몽운동을 활발히 전개하기 위해 태극서관을 설립하였고, 신민회의 외곽조직인 청년학우회 발기인으로 초대 총무에 선임되었다. 일제가 1909년 10월 26일 안중근 의거 이후 신민회 간부들을 탄압하기 시작하자, 신민회에서는 지역 총감이 참석하는 전국 간부 회의를 통해 독립운동 근거지를 해외에 건설하기로 하고 군자금과 이주민 모집사업을 실행하였다. 1910년 11월 ‘안명근 사건(일명 안악사건)’조사 과정에서 신민회가 간도에 독립군 기지와 무관학교 설립을 계획하고 있다는 단서를 잡은 일제는 이를 저지하려고 신민회 간부들을 체포하였는데, 이때 선생도 보안법 위반으로 붙잡여 1911년 7월에 징역 2년형을 선고받았다. 이후 일제는 이 사건을 ‘데라우치 총독 암살 음모사건(일명 105인 사건)’으로 조작하여 전국에 걸쳐 신민회 간부 600여 명을 검거하여 기소하였는데, 선생도 복역 중 가혹한 고문을 당하며 재 기소되어 1912년 9월에 징역 10년형을 선고받았다. 선생은 공판 중에 정확한 기억과 물증까지 제시하며 음모사건이 날조된 것임을 논리정연하게 폭로하여 일제 재판부를 궁지에 몰아넣는 완강한 공판투쟁을 전개하였다. 그 결과 1913년 7월 항소심에서 징역 6년형을 선고받고 복역하였다. 그리고 투옥된 지 5년 만에 석방된 선생은 가혹한 고문과 감옥 생활로 만신창이가 된 몸으로 1916년 가족들을 이끌고 북간도 혼춘으로 이주하여 새 근거지를 마련하고 독립운동을 다시 시작하였다. 선생은 1919년 3·1운동이 일어나자 혼춘지방에서 독립만세운동을 주도하고 후배들과 한민회를 창립하였고, 그 산하에 결사대원을 모집하여 한민회군을 창설하였다. 이후 한민회군은 청산리전투에도 참가하여 중요한 역할을 했다. 선생은 안창호의 초청으로 1920년 3월 상하이 임시정부로 갔으나, 임시정부의 요직은 고사하고 북간도 지역 독립운동에 매진할 뜻을 밝혔다. 안창호가 이를 받아들여 선생을 대한민국임시정부 특파원으로 임명하여 파견하는 것으로 결정하였으나, 애석하게도 1920년 4월 46세를 일기로 고문 후유증 등으로 병사하고 말았다. 선생의 장례식은 대한민국임시정부 요인 3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성대하게 거행되었고, 상하이 인근 외국인 공동묘지에 안장되었다가 문화대혁명기에 만국공묘로 이장되었다. 정부는 조국 독립을 위해 위국헌신한 선생의 공적을 기려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한편, 만국공묘에 안장되었던 선생의 유해는 1993년 8월, 광복 48년 만에 박은식ㆍ노백린ㆍ신규식ㆍ김인전 선생과 함께 대한민국으로 봉환되어, 서울현충원 현충문 앞에서 각계인사, 외교사절, 시민 등 6천여 명이 모인 가운데 국민제전으로 영결식을 거행하고 애국지사묘역에 모셔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