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결과
-
[김연희 칼럼] ‘인류세’라는 새로운 시대‘인류세’라고 들어본 적이 있는가? ‘인류세’라는 단어를 처음 접했던 곳은 몇 년 전 과학예술비엔날레 미술관에서였다. 많은 전시품과 해설이 있었지만, 나로서는 쉽게 이해가 되지 않았던 전시회로 기억된다.그 당시 무슨 뜻인지도 모르면서 뇌리에 깊이 새겨진 하나의 단어가 바로 ‘인류세’이다. 얼 C. 엘리스의 저서 <인류세>에 용어에대한 설명이 나온다. 인류세라는 단어는 2014년 옥스퍼드 영어사전에 등재되면서 다음과 같이 정의되었다. “현재의 지질학적 시대. 인간의 활동이 기후와 환경에 지배적인 영향을 끼쳤다고 간주되는 시대” 아직 공식적으로 인정을 받은 지질시대의 명칭은 아니다. 국제층서위원회(ICS)에서 검토 중이지만 하나의 지질시대로 구분하기에는 그 기간이 짧다는 의견이 많다. 45억 년 지구 역사에서 어느 한 종(種)이 지구 환경에 지금처럼 절대적인 영향을 끼친 적은 없었다고 한다. 지구 환경에 극적인 변화가 있었던 사건을 대멸종이라 하는데 지금껏 5번의 대멸종이 있었다. 소행성의 충돌, 화산 활동, 기후 변화에 따른 빙하기 등을 원인으로 꼽는다. 언젠가 다가올 6번째 지구 대멸종의 원인은 인간이 될 것이라고 한다. 무분별한 개발과 산림 파괴, 화석연료 사용, 산업혁명 이후 눈부신 경제, 과학, 문화 발전의 이면에는 지구의 말 없는 희생이 있었다. 이미 탄소 배출량은 위험수위를 넘어갔으며 기후 변화로 인한 기온 상승 등 오랜 시간 축적된 문제의 씨앗들이 무서운 열매를 맺기 시작했다. 나 역시도 그 원인을 제공하는 인간 중의 한 사람임을 생각하면 가슴이 답답해진다. 과연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텀블러를 들고 다닌다고 도움이 얼마나 될까? 자가용 대신 지하철을 이용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내가 하는 작은 일들이 과연 도움이 되기는 되는 걸까? 회의가 들 때도 있다. 그렇다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면 지구에 대한 인간의 직무유기다. 우리는 무엇이라도 해야 한다. 간간이 고래나 거북이의 뱃속에 플라스틱이며 각종 쓰레기가 가득 찬 채 발견되는 뉴스를 접할 때면 정말 울고 싶어진다. 인간은 무슨 자격으로 지구의 모든 생명체 위에서 군림하며 함부로 할 수 있는 것인지 이 오만함이 무섭다. 지구 최대의 재앙은 진화한 인류가 아니었을까 싶다. 다행히 현재 전 세계적으로 자연 생태계 파괴와 기후 변화에 따른 위험성을 인식하고 함께 해법을 찾기 위해 노력을 하고 있다.온실가스 배출량의 단계적 감축안을 담은 파리기후협약 등을 들 수 있다. 간절히 바라는 것이 있다면 미래의 인류를 위한 대범한 결정들이 이루어졌으면 한다. 최근 지구의 생명을 다룬 다큐멘터리를 본 것이 ‘인류세’를 다시 떠올리는 계기였다. 지구의 생명에 관한 내용으로 보는 내내 인류의 암울한 미래가 예견된 것 같아 한숨이 절로 나왔다. 그나마 한 가닥 위로의 말은 인간은 지구의 변화를 이해하는 최초의 종이라는 것. 또한, 이를 바로 잡기 위해 뭘 해야 하는지 안다는 것이다. 아직 우리와 지구의 미래는 희망이 존재한다는 말이 아닐까? 6번째 대멸종은 실현되지 않을 가능성인 채로 남기를 바라며, 과연 우리가 미래의 지구와 인류를 위해서 지금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새로운 질문을 던져보게 된다.
-
【리키마루 사치코의 행복 씨앗】명상의 효능<주오대학교 교수 리키마루 사치코> 지난 주 아는 분에게 걷기명상이라는 이야기를 들어서 나도 해 보았다. 나중에 찾아봤더니 내가 한 것은 좁은 뜻으로 하는 걷기 명상은 아니었지만 걸으면서 자연의 아름다움을 즐기며 많은 깨달음을 얻었다. 시작 첫날은 비가 내리고 있었다. 공원 안에 있는 꽃, 나무, 새들은 비가 내려도 그 환경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그런 모습을 보면서 인간만이 자연을 지배하려고 하고 그 태도 때문에 오히려 자연질서에서 단절된 느낌이 들었다. 요즘 문제가 되는 지구온난화도 인간이 환경을 지배하려고 활동한 결과다. 그것은 전 세계적인 큰 문제라는 사실을 작년 여름 폭염 때문에 모두가 인식한다. 하지만 구체적인 대책은 지지부진하다. 인간은 자연의 목소리를 더 깊은 주의를 가지며 들어야 한다고 느꼈다. 두 번째 날은 날씨가 아주 좋았다. 전날에 본 식물을 다시 보았을 때 큰 차이가 있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날씨가 좋은 날에는 꽃이 피어 있지만, 잎은 아래로 향하고 있다. 반대로 비가 내린 날에는 꽃이 피어 있지 않았지만, 대신에 잎이 크게 펴져 있었다. 같은 식물이지만 날마다 그 모습이 얼마나 다른지 몰랐다. 우리는 오늘도 내일도 별로 다르지 않다, 매일 매일 삶이 똑같다는 생각을 쉽게 가질 수 있다. 하지만 하루하루가 다르고 똑같은 날은 없다. 이 메시지를 그 날 식물에게서 받았다. 지금까지 나는 오늘이 내 삶에 마지막 날이라고 생각해서 후회 없이 살려고 노력하고 있었다. 후회 없이 살려고 하는 마음은 나쁘지는 않지만, 일부러 노력하지 않아도 처음부터 똑같은 날은 없었던 것이다. - 지금까지 했던 과거의 일들이 현재의 나를 만들었다. 똑같이 현재 노력이 미래의 나를 만들 것이다. 미래의 목적에 행해 매일 꾸준히 노력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뜻으로 주변에서 자주 듣는 표현이다. 꿈을 가지고 있다면 이 꿈을 향해 꾸준히 걸어가는 것은 좋다. 하지만 목적지를 명확하게 설정하지 못하기에 불안한 마음으로 매일 살아야 한다면 불행하다. 인간은 불안감을 느끼면 그 상태를 생명에 위험한 상태라고 뇌가 판단하여 편도체가 위험신호를 낸다고 한다. 이 신호를 멈추기 위해서는 편도체의 기능을 억제하는 전전두엽 더 활발하게 활동시켜야 한다. 이 순간, 여기서 집중하게 만드는 명상은 편도체의 과도한 활동을 억제하기 위해 유용한 방법이다. 명상은 특정한 종교를 추천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현재에 집중한다면 과거에 대한 후회와 미래에 대한 불안감에서 해방된다. 그것뿐만이 아니라 평소 보고 있어도 보이지 못했던 것을 볼 수 있게 되고 듣고 있어도 들리지 못했던 것을 들을 수 있게 된다. 즉 새로운 관점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명상은 반드시 걸어서 해야 하는 것이 아니다. 의자에 앉아서 하거나 누워서 하는 것도 가능하다. 만약 그런 시간도 없다면 짧은 시간이라도 호흡에 집중하면 된다. 스트레스가 많은 현대사회에서 편도체의 활동을 억제하여 더 건강한 더 행복한 삶을 사는 비결이 여기에 있다.
-
[유은지 칼럼] 작은 것에서부터 나아가는 힘.<유은지 칼럼리스트> 아침에 일어나 잘 익은 사과를 식초 물에 넣어 둔다. 잠시 뒤 흐르는 물에 씻어내 물기를 적당히 닦아내면 사과의 표면에 윤기가 흐른다. 보기만 해도 군침이 도는 사과를 한입 베어 물면 상쾌하고 달달한 맛에 입안이 즐거워진다. 사과를 먹는 습관은 건강하게 살고 싶은 나의 바람에서 시작되었다. 식사를 거르기보다 조금이라도 건강을 챙기기 위해 먹고 있지만, 작은 사과 하나가 아침 시간 활력을 가져다주는 것을 체험하고 나서부터 루틴처럼 하는 행동이기도 하다. 샤워하기, 옷 입기 등 우리가 하는 경험 중에는 의식하지 않은 상태에서 반복적이며 자동적으로 이루어지는 것들이 많다. ‘해빗’의 저자 웬디 우드는 우리 삶의 43%는 습관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했다. 우리가 경험하는 많은 상황과 환경 속에서 이루어지는 행동이 의식적인 것인지 무의식적인 것인지는 알아차리기 쉽지 않지만, 무의식적으로 반응하여 나타나는 것을 습관이라고 한다. 웬디 우드의 말처럼 우리의 삶은 무의식적인 습관으로 이루어져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루틴은 무엇일까. 루틴은 의식적인 노력에 의해 이루어지는 행동이라고 하는데, 예를 들어 새벽에 일어나 30분간 글을 쓴다거나, 정해진 시간에 맞추어 영양제를 챙겨 먹거나, 잠들기 전 일기를 쓰는 것 등을 말한다. 즉 루틴은 의지나 노력에 의해 이루어지는 행동이다. 루틴이 지속되면 습관화되는데 이는 생각처럼 쉬운 일은 아닌 것 같다. 익숙하지 않는 행동이 습관이 되려면 환경과 상황을 지속할 수 있도록 만들고, 즉각적인 보상도 필요하다. 나 역시도 아침 기상 후 사과를 입에 넣는 행위가 자연스러워지는데 생각보다 오랜 시간이 걸렸었다. 사과를 씻는 것조차 번거로워 세척사과를 사서 먹은 적도 있으니 말이다. 아직도 의식해야 가능한 수준의 일이지만, 사과를 먹는 행동이 나에게 주는 포만감과 활력을 체험하지 못했다면 지속하지 못했을 것이다. 실제로도 사과는 섬유질과 수분이 많아서 다른 과일보다 포만감을 가져다주므로 체중관리에도 용이하다고 한다. 아침식사를 하지 않는 나로서는 사과 한 알이 단순하지만 꽤 괜찮은 식사 대용이었다. 또 사과가 가진 항산화 성분이 면역강화에 도움이 된 것인지 감기에 걸리는 빈도 역시 줄어들었다. 이러한 보상이 있어 지속할 수 있었겠지만, 시도하지 않았다면 느끼지 못했을 경험이다. 루틴이 습관화되는 데까지 어느 정도의 시간이 소요되겠지만, 삶에서 의미 있는 행동을 지속하기 위해 환경을 조성하는 것은 무척이나 중요한 것 같다. 커피를 줄이기 위해 책상 곳곳에 차를 종류별로 두는 것, 잠들기 전 일기를 쓰기 위해 침대 옆에 다이어리를 두는 것 등 원하는 것을 이루기 위해 환경을 만드는 것은 습관을 위한 지름길일지도 모른다. 우리가 원하는 건강, 성공, 행복을 이루기 위해서는 열정과 끊임없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한다. 열정과 노력도 중요하지만, 작은 행동들을 습관처럼 무한히 반복하면서 이루어지는 결과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 역시도 아직은 의식적인 행동이지만, 사과 하나를 챙기는 일, 나의 건강을 우선시하는 것을 습관처럼 만들어가고 있다. 자신의 삶에서 의미 있는 무언가를 이루고 싶다면, 작은 행동부터 루틴과 습관을 만드는 과정을 시작해 보면 좋겠다. 그리고 그 일이 늘 작심삼일에 머물다 끝이 났다면 이번에는 지속하여 나아갔으면 한다. 그리고 그 과정이 삶의 좋은 습관으로 자리 잡았으면 좋겠다. “시작은 시작일 뿐, 시작과 지속은 다르다.”
-
【리키마루 사치코의 행복 씨앗】실천하면 꿈은 통과점(通過点)이 된다< 주오대학교 교수 리키마루 사치코 > 2주일 전에 색소폰의 발표회를 앞두고 정신이 없다는 글을 썼다. 당일 실수도 있었지만, 청중과 소통하는 마음으로 연주하려는 목표는 일단 달성했다. 발표회를 끝낸 지난 주말에 다시 연습을 하려고 음악학원을 다녀왔다. 발표회에 너무 신경을 써서 아주 피곤했고 동시에 미뤄둔 일이 많아 며칠 동안 연습할 수 없었다. 그렇기에 연습을 시작했을 무렵, 연주할 때 숨을 어떻게 사용하는지, 입 모양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기억하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그럼에도 15분정도 하다가 다행히 감각이 돌아왔다. 여기까지는 예상된 일이었다. 하지만 한 가지 놀랐던 것이 있었다. 다음 연습 과제로 하려고 가져 간 곡이 생각보다 쉽게 연주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원래 알고 있는 곡이었지만, 연습하기 전에는 연주할 수 있게 될 때까지 몇 주나 더 필요할 줄 알았다. 물론 더 연습해야 하는 부분은 남아 있었다. 하지만 손가락도 이전보다 부드럽게 움직였고 감정이입도 더 쉽게 할 수 있게 된 나에게 가장 놀랐다. 발표회에 대한 불안감을 없애기 위해였지만 주 3,4번 하루 두 시간씩 시간을 잊을 정도로 미친듯이 반복해서 연습한 효과라고 할 수 있는 것 같다. 그러다 발표회 전에 선생님이 하신 말씀이 떠올랐다. 너무 긴장된다고 말한 나에게 선생님은 “발표회는 어차피 통과점이에요.”라고 하셨다. 그때는 그 날이 지나면 당연히 그날이 과거가 되기에 통과점이 된다는 뜻으로 그 말씀을 이해했다. 그러나 통과점이라는 말에는 그 뜻 이상의 의미가 있었던 것 같다. 나는 발표회를 목표로 열심히 연습을 했다. 하지만 사실 발표회를 목표로 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연습하는 것 자체가 중요했다는 것이다. 고등학교 시절 수학 선생님이 자주 하셨던 말씀이 있다. - 시험을 악용해서 수학을 공부하라. 문과 방에 있던 우리에게 수학은 어려운 과목 중 하나였다. 그래서야 수포자라도 시험의 기회만이라도 공부하라는 선생님의 말씀이었다. 나는 발표회를 목표로 연습해 왔지만 나도 모르게 발표회를 “악용하며" 연습했던 것 같다. 동시에 색소폰 선생님이 말씀하신 “통과점"이라는 뜻도 정확히 알게 되었다. 그곳을 통과했기에 다음 목적지가 보이는 것이다. 무엇인가 이루고 싶은 일이 있을 때 실천하면 그 일은 통과점이 되지만 실천하지 않으면 계속 꿈으로만 남아 있고 다음 목적지도 보이지 않는다. 발표회까지 거의 두 달 동안 늘 불안한 마음으로 살았지만 이 고통스러운 시간은 나에게 쓸데없는 시간이 아니였다. 한 번 실천하면 통과점이 된다는 실천의 힘을 몸으로 느낀 소중한 시간이었다. 나는 벌써 다음 성장의 기회를 바라보고 있다.
-
[김연희 칼럼] 기억, 얼마나 믿을 수 있을까?나는 가끔 엄마와 오래전 함께 겪었던 한 사건을 두고도 서로 다른 기억 때문에 실랑이를 벌이곤 했었다. 엄마의 말을 듣고 있노라면 마치 어제 일어난 일처럼 생생하게 느껴진다. 나 역시 주장을 꺾지 않고 팽팽히 맞서고 결국엔 엄마는 화를 참지 못하고 드러눕고야 만다. 나는 그때가 되어서야 사과를 하고 상황은 종료된다. 따지고 보면 누구의 기억도 정확하다고 할 수 없는데, 그때는 왜 그렇게 고집스럽게 우겼을까 싶다. 오기였을까? 내가 틀리지 않았음을 인정받고 싶었던 것일까? 지금의 나라면 이런 상황에서 대부분 “그래요. 당신 말이 다 맞습니다.”라고 하고 말았을 것이다. 말씨름을 싫어하는 개인적 성향 탓도 있겠지만 이제는 내가 알고 있는 사실을 다 믿지도 않고 정확한지 자신할 수도 없음을 알기 때문이다. 얼마든지 내 생각이 다를 수도 있음을 항상 염두에 두고 있다. 지금 내 머릿속에 있는 기억을 얼마나 믿을 수 있을까? 내 기억은 틀리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이 오해를 만들고 다툼을 불러온 것은 아닌지 돌아보게 된다. 왜 우리는 같은 상황에서 주고받은 대화를 시간이 지나면 각자 다르게 떠올리게 되는 걸까? 기억의 오류는 이것뿐만이 아니다. 몇 년 전 동해로 가족 여행을 다녀온 적이 있다. 내 머릿속에 저장된 동해 여행은 분명 가을이다. 가을 하늘, 바람, 바다로 각인되어 있는데, 최근에 여행을 다녀온 계절이 봄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계절까지 통째로 바꿀 수 있다니. 사람의 기억이란 있는 그대로 믿을 수 없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깨닫는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 걸까? 작가 박지영의 저서 <기억은 변한다>에는 “기억을 회상한 후 다시 저장하는 과정(재응고화)에서 정보의 삭제나 추가, 강조와 같은 변형이 일어난다. 그래서 우리의 기억은 재구성된 기억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사람의 기억은 다시 떠올릴 때 그대로 출력하는 것이 아니라, 기존에 저장되어 있던 정보에 새로 보고 들었거나 자신의 상상까지 더하여 재구성 과정을 거치게 된다는 말이다. 이를 “기억의 재응고화”라고 한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한다. 궁금증이 풀리면서 왜 서로 다른 이야기를 하게 되는지 이해를 해 본다. 사람이 이상한 게 아니라 애초에 그렇게 만들어진 뇌인 것이다. 매 순간을 영화처럼 기록해 놓을 수 있다면 처음부터 분란이 일어날 일도 없겠지만 불가능한 일이다. 언제든 내 기억과 생각이 온전하지 않음을 받아들이고 상대방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 보면 어떨까? 생각해 보면 말의 진실 여부를 두고 공방을 벌일 때가 많았다. 대부분 현재에 아무런 영향력도 미칠 수 없는 말 몇 마디를 두고 설전을 벌인다. 이미 각자의 머릿속에서 적당히 변형이 일어났을 기억을 두고 마음이 상해가면서 말이다. 그냥 지기 싫고 인정하기 싫은 것이다. 오늘 알게 된 것을 그때 알았더라면 좀 더 현명하게 대처하지 않았을까 싶다. 엄마가 “그래 너 잘 났다.”라고 화를 내며 드러눕게 만들 일도 없었을 텐데 말이다. “그래요. 당신 말이 다 맞는 것 같아요.” 상대방을 가장 온화하게 이기는 방법이 아닐까?
-
[유은지 칼럼] 초콜릿 한 조각< 유은지 칼럼리스트 > 피로가 몰려오거나, 마음이 자꾸만 아래로 떨어지는 날에는 달달한 무언가를 찾게 된다. 그럴 때, 초콜릿 하나를 사서 한 입 베어 무는데, 입안 가득 초콜릿이 녹아내리는 순간이 오면, 바닥으로 내려앉던 기분이 조금은 나아질 때가 있다. 초콜릿, 그 달달하고 감미로운 맛과 향은 어느 누구에게나 즐거움을 안겨다 주는 매력이 있는 듯하다. 너무 많이 섭취하면 건강에 좋지 않다고 인식되기도 하지만 실제로 초콜릿은 세로토닌과 엔도르핀의 분비를 촉진하여 행복감을 주기도 한다. 어린 시절, 초콜릿을 먹으려면 부모님 눈치를 보기도 했었지만, 지금은 쉽게 접할 수 있다. 초콜릿 한 입. 한 조각을 입에 넣는 것은 달콤함에 이끌린 행동이기도 하지만, 잠시 복잡한 마음을 내려놓고 즐기는 여유가 되기도 한다. 입안에 퍼지는 초콜릿 덕분에 마음의 허기가 달래지니 말이다. 처음 만나는 관계에서 가끔은 초콜릿을 선물할 때가 있다. 함께 초콜릿 조각을 나누다 보면, 어색했던 마음이 적당히 녹아내리는 순간이 온다. 초콜릿이 녹아 그 맛을 즐길 때까지 잠시의 기다림, 사람과의 관계에서도. 마음에도 잠깐의 기다림이 필요한 게 아닐까. 최근 초콜릿을 소재로 한 영화 ‘웡카’에는 마법 같은 초콜릿을 만들어 사람들을 행복하게 하고 싶은 주인공이 등장한다. 그는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초콜릿을 만들었던 엄마가 남긴 비밀을 발견하게 되는데, 초콜릿은 혼자가 아닌 누군가와 함께 할 때 더 달콤하고 행복할 수 있다는 메시지였다. 개인적으로 맛있는 초콜릿은 정말이지 함께 나누고 싶지 않을 때도 가끔은 있지만, 함께 나누어 먹는 초콜릿 맛이 더 달고 맛있다는 것은 안다. "비밀은 초콜릿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함께 나누는 사람들이야." - 웡카 사랑하는 사람에게 달콤함과 좋은 기분을 나눌 수 있다는 점에서는 주고받는 선물로 초콜릿만 한 것도 없다는 생각을 해본다. 달콤함으로 기분전환이 필요할 때, 어깨를 축 늘어뜨린 누군가가 옆에 있다면, 작은 초콜릿 하나를 선물해 보는 것은 어떨까. 초콜릿 한 입을 입안에 넣기 전과 후는 다른 세상이 될 테니 말이다.
-
[김연희 칼럼] 인연은 강물처럼 흐른다“저 오늘이 마지막이에요.” 몇 달 전부터 찾기 시작한 카페의 직원이 주문을 받으면서 말한다. “어머, 왜요? 서운해서 어떡해요.” “좀 멀리 이사 가게 됐어요. 손님께는 이야기하고 가야 할 것 같아서 처음 말씀드려요.” “얘기해줘서 감사해요. 그동안 고마웠어요.” 라며 서운한 마음 가득 담아 마지막 인사를 건넨다. 작년 긴 겨울이 시작될 무렵부터였나 보다. 해가 뉘엿뉘엿 넘어갈 때쯤이면 나는 카페 문을 열고 들어온다. 따뜻한 커피를 주문하고 통유리창 너머 짙어가는 어둠을 벗 삼아 내 안의 고독과 만났고 글을 썼다. 그렇게 시간이 쌓여 카페 직원과 반갑게 인사하고, 보이지 않으면 궁금한 사이로 시나브로 발전하고 있었음을 헤어질 때가 되어서야 깨닫는다. 그런 직원이 자신의 부재 이유를 미리 알려주는 마음 씀씀이가 마냥 감사하다. 그래, 이것만으로도 충분히 아름다운 인연이란 생각이 든다. 모든 만남이 절절할 수도, 많은 사연을 가질 필요도 없지 않을까? 우린 좋은 인연을 이야기할 때 시간과 비례해서 말하기도 하고 서로가 서로에게 얼마나 필요한 존재였는지로 그 깊이와 특별함을 나타내기도 한다. 그러나 모든 인연이 시간과 비례하지도, 내 필요에 따라서 가치를 따질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뿐인가? 사람과 사람 사이는 생각지도 못했던 일로 멀어지기도 하고, 놀랄 정도로 갑자기 가까워지기도 한다. 관계의 변화를 예측하고 행동하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살다 보면 무수한 변수가 우리의 삶 속에서 작용할 수밖에 없다. 우리는 모두 각자 다른 관점으로 세상을 보고 있으며 그 세상과 세상이 만나는 교집합에서 서로 다른 생각이 만나기 때문에 내 의도가 전부가 될 수 없기 때문이다. 나는 강물이 물줄기를 따라 유유히 흘러 큰 바다에 이르는 것처럼, 사람과 사람의 만남 또한 물결을 타고 흘러간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사는 세상이 끊임없이 변하고 우리도 변화를 거듭하고 있기 때문이다. 강산도 자의든 타의든 십 년이면 변한다고 하는데, 우리의 인간관계 또한 세대교체를 하는 것처럼 누군가는 저편으로 밀려나고 누군가는 새로이 내 안으로 들어오게 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 아닐까? 맹자는 “산속의 좁은 길도 계속 다니면 길이 만들어지지만, 다니지 않으면 풀이 우거져 길이 막히게 된다.”라고 했다. 원래는 학문을 비유해서 한 말이지만 인연에 빗대어도 한치 틀림이 없는 것 같다. 내가 관심을 주는 인연이 자랄 수밖에 없다. 세상에 의미 없는 만남이 어디 있겠는가? 어쩌면 오늘 지금 내가 마주한 그 누군가가 가장 중요한 사람일지도 모른다. 설혹 다시 마주할 일이 없어도 그 작은 인연도 소홀히 여기지 않는 진심이 좋은 인연으로 이끌 수 있기 때문이다. 어떤 만남이 우리를 어디로 데려다줄지는 아무도 모르지 않는가? 마지막 인사를 건네던 카페 직원과의 인연도 이것으로 끝이라고 누구도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시간이 지나 어디에서 또 어떤 인연으로 만나질지 아무도 모르기 때문이다. 지금껏 내 생의 물결 위에 함께하고 있는 사람은 그 자체로 감사하고, 새로 다가오는 인연 또한 마음을 열어 환영한다. 그리고 이제는 나와 다른 길을 가고 있는 누군가가 있다면 그 역시 감사와 좋은 일이 함께하기를 기원해 본다.
-
【리키마루 사치코의 행복 씨앗】셀프브랜딩은 연극이다< 주오대학교 교수 리키마루 사치코 > 현대는 셀프브랜딩의 시대라고 한다. 셀프브랜딩이란 자기만의 가치를 브랜드화하여 특정 분야에 대해서 자신을 떠올릴 수 있도록 만드는 과정이라고 정의된다. 하지만 브랜딩하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할지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 - 네가 하고 싶은 것을 찾아서 나만의 가치를 만들어라. 나만의 가치. 나다움. 자주 듣는 말이다. 그럼 나만의 가치는 어떻게 찾을 수 있을까? 나는 외국어 공부와 글쓰기를 좋아한다. 그래서 내가 배운 외국어를 직접 가르치기도 했고, 유튜브에서 외국어를 소개하는 영상이나 동기부여에 관한 원고를 스스로 써서 영상을 만들기도 해왔다. 하지만 그 일들을 어떻게 가치와 연결하면 될지에 대한 구체적인 방법은 애매모호한 채였다. 몇 주 전에 “스토리를 만드는 법”이라는 일본어 책을 읽었다. 저자는 시나리오 센터라는 곳에서 소설을 쓰는 방법을 가르치는 강사다. 이 책에 따르면 소설 주제는 오랜 문학 역사상 다 사용했고 요즘 출판된 소설 중에 기발적인 새로운 주제로 쓴 소설은 거의 없다고 한다. 하지만 그 주제를 독자에게 이해시키는 사건, 또 주인공이 겪고 있는 문제와 그 해결책에 대해서는 독창성이 있어야 된다고 한다. 이 설명을 읽어서 나는 셀프브랜딩의 본질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소설 주제와 같이 도달점만 보면 프랜딩된 결과는 흔한 일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결론이 아니라 그 사람이 거기까지 온 과정이다. 그 과정은 사람마다 다르다. 그 점이 바로 중요하다. 소설에서 나오는 사건, 장애, 극복 과정에 독창성이 있어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다만 셀프브랜딩은 자기만의 스토리텔링만으로 완성하는 것이 아니다. 다른 사람들이 특정 분야에 대해서 자신을 떠올릴 수 있도록 그 가치를 남에게 보여주는 과정도 필요하다. 즉 셀프브랜딩은 셀프마케팅도 포함된 것이다. 셀프마케팅에서 중요한 것은 자신을 사랑해야 한다는 것이다. 마케팅 이야기에 사랑이란 이상한 느낌이 들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자기가 살아왔던 궤적을 보여줄 때에는 용기가 필요하다. 다른 사람들이 무엇을 말하든 자신만의 길을 보여 줄 수 있는 용기다. 그것은 자신을 사랑해야 가능한 행동이다. 셀프브랜딩은 연극이다. 나만의 주제를 찾아 그것에 관한 각본을 쓰고 그것에 따라 연출하여 관객에 보여 주는 행위다. 셀프브랜딩을 한다는 것은 나의 스트리의 각본가, 연츨가, 그리고 홍보담당자이 된다는 것이다.
-
[김연희 칼럼] 쉼이 필요할 때 나는겨울 동안 잠시 쉬었던 새벽 운동을 몇 달 만에 다시 시작한다. 오랜만에 찾은 공원에서 시선을 끄는 것이 있다. 그것은 소나무. 이 공원에 소나무가 이렇게 많았던가? 그 존재조차 기억에 없었던 소나무를 새삼스레 깨닫게 된 것은 소나무로부터 얻는 “쉼” 때문이다. 산과 숲을 좋아하는 나는 일부러 시간을 내서라도 다녀온다. 소나무는 우리나라 산 어디에서나 자라고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나무이다.나 역시 소나무가 우거진 숲 가운데로 난 길을 걷는 그 시간이 좋다. 그날 찾은 숲은 오랜 세월 그 자리의 주인이었음을 말해주듯 두 팔을 벌려도 닿지 않는 아름드리 소나무로 가득했다. 끌리듯이 나무를 온몸으로 안아본다. 가만히 가슴을 밀착시키고 한쪽 볼도 거친 소나무껍질에 살포시 올려놓으며 두 눈을 조용히 감는다. 계절은 늦가을로 그늘이 드리워져 차가울 것이라는 예상을 깨고 너무나 포근했고 평화로운 느낌이 전해졌다. 나무와 맞닿은 가슴의 눌림이 주는 느낌은 엄마에게 업히거나 안겼을 때 아기가 받는 편안함과 비슷할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마음의 긴장이 스르르 풀리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세상과 잠시 분리되는 것 같았고 내가 소나무를 끌어안은 것이 아니라 소나무가 나를 다정히 안아 주는 새로운 경험이었다. 그날 이후 산과 숲, 어디든 소나무를 보면 살포시 안아보는 새로운 습관이 생겼다. 누군가는 그것도 명상의 일종이라고 말을 한다. 물론 그럴 수도 있겠다. 일상에서 벗어나 숲을 찾았다는 것만으로도 벌써 몸은 이완되기 시작하니까 말이다. 현대는 명상의 시대라는 말이 있다. 그러나 나의 행동이 명상 수련의 한 형태인지 아닌지는 나도 분명하게 말할 수가 없다, 그것보다는 마음을 위로받고 잠시라도 쉼을 하고 재충전을 할 수 있었음이 중요하지 않을까 한다. 누구나 긴장으로 가득했던 몸과 마음을 내려놓고 휴식을 취할 수 있는 나만의 장소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 꼭 필요하다는 생각을 한다. 쫓기듯 일상을 살다 보면 나도 모르게 쌓이는 스트레스를 적절히 풀어주어야 건강한 삶을 살 수 있기 때문이다. 작가 문요한은 저서 <오티움>에서 “성인이 되면 힘들 때마다 누군가에게 위로를 받을 수 없다. 스스로 위로할 수 있어야 한다.”라고 말하고 있다. 사실 우리는 어른이라는 이유로 말하지 못하고, 자기에게 주어진 여러 위치와 역할 때문에 어디에도 쉽게 손을 뻗지 못한다. 그리고 삶의 많은 순간을 혼자 감당하며 살아가고 있는 것이 사실이지 않은가? 이럴 때 나를 온전히 쉬게 하고 행복을 느끼게 해 줄 수 있는 것이 있다면 바다, 산, 명상, 운동, 독서 등 어떤 활동이 되었든 좋다. 내가 집중할 수 있고, 그 순간 진정 편함을 느끼고 즐거울 수 있다면, 그 자체로 쉼이고 재충전의 계기가 된다. 사람마다 쉼의 형태는 다르다. 쉼이라는 것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상태가 아니라, 그 시간을 온전히 즐기고 기뻐할 수 있는 좋은 경험을 내게 선물하는 것이다. 내가 좋은 일을 하면 된다. 누구 눈치 볼 것 없다. 내가 숲과 나무에서 쉼을 찾는 것처럼 누구나 일과 쉼의 균형을 유지하기 위한 나만의 방법을 찾는 고민을 해 보았으면 좋겠다.
-
【리키마루 사치코의 행복 씨앗】 앞으로가 안 되면 옆으로<주오대학교 교수 리키마루 사치코> 시험이나 다른 발표회 때문에 쉽게 긴장되는 사람은 적지 않을 것 같다. 나도 그런 사람이다. 나는 색소폰을 배우기 시작한 지 약 1년이 되었고 올 3월 3일에 첫 발표회가 있다. 지난해 1월에 시작했을 때 발표회 신청 마감날이 이미 지나가기 때문에 작년에 있었던 발표회에 참석은 못 했다. 그렇기에 올해 당연히 참석하려고 열심히 연습했다. 하지만 연습하면 할수록 그 대가를 원하기 시작한다. 잘하고 싶다는 마음만이 커진다. 원래 완벽주의자인 성격이 이런 경우에는 역효과를 낳는다. 극복하기가 어려운 전형적인 발표 공포증이다. 필기시험이라면 공부하면 되지만 발표회와 같은 직접 행동이 수반되는 이벤트에 대해서는 늘 잘할 수 있을지 걱정된다. 떨지 않도록 하기 위한 조언도 그동안 많이 읽었다. “먼저 많이 연습해라!” 당연한 조언이다. 하지만 연습을 많이 한다면 또 발표불안증이 고개를 든다. 이 괴물이 나에게 말한다. - 이렇게까지 연습했으니 당연히 잘할 수 있지? - 잘 못하면 안 되지! 자신을 질타격려(叱咤激励)해야 할 연습이 거꾸로 자신을 몰아간다. 내가 다니는 음악교실에는 당연히 나보다 오랫동안 색소폰을 연주하는 분이 많다. 다른 분들의 연주는 나에게 큰 동기부여가 된다. 하지만 아직 그 수준까지 내가 도달하지 못 한다는 현실도 당연히 보아야 한다. 그 분들보다 늦게 시작했으니 당연하다. 그렇게 생각할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평소 나는 내가 원하는 것을 다 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신념을 갖고 산다. 아주 긍정적인 마이드이지만 발표회와 같은 경우에는 그 신념이 너무나 부정적인 효과를 준다. “타인과 비교할 필요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교를 원한다면 과거의 나와 비교하라.” 이것도 자주 듣는 말이다. 연습했으니 전보다 조금이라도 더 잘할 수 있게 된 것을 나도 안다. 하지만 내가 원하는 기준에 아직 도달하지는 못한다. 타인과 비교하느냐라는 문제가 아니라 내가 현재의 나에게 긍정적인 평가를 주지 못하는 것이다. “완벽하게 하려고 하지 말고 이 기회를 즐겨라.” 긴장되지 않는 비결 중에 이런 조언도 자주 보인다. 그런 조언들을 몇 번이나 머릿속에 반복하며 며칠 동안 보내고 있었다. 고민하고 있어도 어쩔 수 없으니 이렇게 불안하게 되는 것보다 차라리 연습해야 하는 것이 낫다고 연습도 평소보다 더 많이 하기도 했다. 좋은 결과를 얻기 위해 한 행동이었지만 연습을 하면 할수록 괴물이 또 귓가에 속삭인다. - 연습을 많이 했으니 잘할 수 없으면 안 되지! 어느 날 우연히 한 노래를 들었다. 일본 가수 노래이며 주제는 도전이었다. 노래는 이렇게 말했다. "날아가 보자, 앞으로가 안 되면 옆으로” 나는 깨달았다. 기본적으로 도전이란 앞에 가려고 하는 것이다. 하지만 옆에 가도 괜찮다. 중요한 것은 도전을 시작하는 것, 일단 시작하면 계속하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순조롭게 앞으로 날아가지 못해도 된다. 그것을 알게 돼서 조금 마음이 가벼워졌다. 청중에게 잘하는 연주는 듣기 좋지만, 그것보다 그들은 음악을 즐기려고 온다. 악기 연주도 스피치도 성공한 사람의 공통점이 있다고 한다. 바로 청중과 대화, 소통하는 것이다. 발표회까지 더 일주일 남아 있다. 옆으로 날아가면서 당일 날 음악을 통해 청중과 소통할 수 있다면 그것은 나에게는 굉장한 성공이다. 독자분들의 도전도 성공하시길 바란다.